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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yJjdCI6ImgyNE9wYlBXQ1dVSjdPMDk0MnFRdU5PMEtqdmdpK2c0M0E5d3R2bktWM1k9IiwiaXYiOiI4NjlhMTVhYzE5NTM5YjE4ZWFmZWJiZDFjZjhlMTBlOSIsInMiOiJkYjI5NWNhMWE0ZWY3YTVmIn0=| 등록일 : 2018.04.16 |조회수 : 783 |추천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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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에 남는 성도
살전1:2 “우리가 너희 모두로 말미암아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며”
형제가 많았던 우리 식구들은 어렸을 때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고 말씀하시는 부모님들의 이야기를 듣고 자랐습니다
그렇지만 실제로 보면 우리 중에 조금씩 더 사랑받는 누군가가 있었고 그 누군가를 은근히 질투하는 마음이 있었던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에게 식구는 복음 안에 형제 자매들이었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 귀하지 않은 사람이 없었고 그들 모두로 인해 감사했지만 그 중에서도 눈에 띌 정도로 기억에 남는 성도는 꼭 있게 마련이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그 성도들의 이름을 나열하며 안부를 물었던 것을 보면서 노사도의 마음을 엿볼 수 있습니다.
특히 브리스기아와 아굴라 부부는 잊지 못할 분들이었습니다.
노사도의 목숨을 위해 자기들의 목까지도 내놓았기에(롬16:4) 생명을 나눈 형제 자매였던 것입니다.
그들은 사역을 위해 이사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고 자신들의 집을 열어 가정교회를 이루었을 뿐 아니라
성도들과 사도의 필요를 위해 어떠한 희생도 마다하지 않고 기꺼이 수행했던 부부였습니다.
그 어떤 핍박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성도들을 격려하는 롤 모델이었으니 노사도가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 세대에 주님의 마음을 헤아리고 주님께서 우리 가운데 이루시기를 원하시는 것이 무엇일까 기도할 때마다 주시는 마음이
바로 우리 장성한 이민 2세 자녀들입니다.
이민 1세의 열심으로 교회는 세워졌지만 그 사이 우리들이 놓친 우리 자녀들이 이미 30대 40대 심지어는 50대의 연령층이 되었습니다.
그들이 교회를 떠난채 하나님을 멀리한 세월이 십수년이 넘은 자녀들도 있습니다.
이 시대의 잃은 양들입니다.
그들을 찾고자 하는 우리 주님의 심정을 우리 교회들이 헤아려야 합니다.
교회를 세우기 위해 그들을 희생시켰던 우리들이었습니다.
이제는 그들의 영혼을 위해 우리가 희생을 감수해야 합니다.
흔히 말하는 이민세대의 old timer들은 자녀들을 위해 이민을 왔다고 말해왔지만
삶과 교회생활에 쫓겨 그들의 영혼을 등한시했고 그냥 좋은 나라에 왔으니 저절로 잘 자라주기만 바라다 보니
커가면서 교회를 등한시하고 떠나는 조용한 출애굽(silent exodus)이 발생했습니다.
이제 먼 타국에 나가있는 그들을 찾아나서야 합니다.
이미 자신들의 자녀를 키우고 있는 그들입니다.
세대간의 다자갈등도 있을 수 있습니다.
이제는 교회에서 나의 필요를 만족받고 그 편리함에 안주하는 정도의 삶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복음이 우리 다음 세대에 전수되고 우리의 신앙이 확장되기 위해서 불편을 감수해야 합니다.
자녀들에게 말하지 못했던 신앙 이야기를 전해줘야 합니다.
처음에는 잔소리로 듣고 귀찮게 받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영혼이 없는 대화, “받으면 받고 아니면 말고” 정도의 대화가 아니라 진정성이 담긴 호소를 장성한 자녀들에게 해보십시오.
이 시대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는 영적 불편함, “나만 잘하면 되지”라고 생각하는 누에고치(cocoon)에서 벗어 나와서
애벌레가 되고 나비가 되어 훨훨 날 수 있는 성도들 입니다.
주변의 장성한 자녀들 그리고 신앙에서 떠난 “가나안” 형제자매들을 바라 봅시다.
은퇴하고 나서 별로 할 일이 없으십니까?
교회 친구들과 함께 골프 치며 점심을 함께 하는 정도로, 그냥 편한 사람들과 어울리는 정도로 살아 가시겠습니까?
주님의 마음을 헤아리고 이 시대의 필요를 채우는 그런 “기억에 남는 성도”들이 되지 않으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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