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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 마음 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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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 마음 아세요?"
          스바냐3:17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나이가 들수록 확실하게 달라지는 것이 있습니다. 호 불호가 더 명확해진다는 사실입니다. 과거에는 그렇게 뚜렷하지 않고 그저 덤덤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점점 좋아하는 것은 아주 심하게 더 좋아하는 현상이 자리잡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 중 하나가 손주들에 대한 사랑입니다. 이것은 자녀들을 낳고 키우던 시절의 그 사랑과 차원이 다릅니다. 손주바보라는 말이 실감이 날 정도로 좋아합니다. 아이들 버릇을 잘못 들인다고 성화룰 해도 그저 귀찮아할 정도로 앉아주고 도닥거리고 바라봅니다. 어쩌다 뺨에라도 뽀뽀 한번 동냥하듯(?) 얻어서 받으면 그저 더 예뻐서 어쩔줄을 모릅니다.

          그러다 감기라도 걸리면 앉아주지 않고 바라보기만 합니다. 혹시 전염되어 애가 고생할까 싶어 멀리서 잠잠히 사랑하며 바라만 봅니다. 옆에서 보는 사람이 빈정대듯 “참 눈물겹다”하고 한마디 합니다. “애들이 커도 그 마음 몰라요...”. “그 마음 몰라주면 어때? 꼭 알아달라고 그러나?” 하고 되묻습니다.

          이러한 마음은 동서양 구분 없이 같은 모양입니다. 오죽하면 “이럴 줄 알았으면 손주부터 낳을 것을...”하는 범퍼 스티커를 차에 붙히고 다닐까?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이 꼭 이와 같다고 스바냐는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잠잠히 사랑하신다는 것이 도대체 어떤 것인지 마음에 와닿지 않다가 이제 하나하나 실감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리고 기뻐하실 때 즐거이 부르시면서 기뻐하신다는 것입니다.

          “내 이름을 부르시며 기뻐하시는 하나님”이 상상이 되지를 않았습니다. 자라면서 열등의식이 많아서 그런지 놀림을 많이 받아서 그런지 그 이름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는데 그 이름을 즐거이 부르신다니 마음에 와닿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고 그분을 “아버지”로 부르면서 어느 날 “아버지”하고 하나님을 부르다 눈물이 핑 돌며 감사할 때, 그 마음이 이해되기 시작합니다.

          우리가 예수의 이름을 부르며 감사하며 사랑하기 시작하기 오래 전 부터 우리 이름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그 마움을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어서 더 확실하게 깨닫기 시작한 것은 이제 너무 나이가 들어서 얻은 지혜인가?

          늦게라도 얻은 그 지혜에 감사하며
          이 아침에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실 아버지께
          달려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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