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욘드" 느4:4 “우리 하나님이여 들으시옵소서 우리가 업신여김을 당하나이다 원하건대 그들이 욕하는 것을 자기들의 머리에 돌리사”
“떴다 떴다 비행기 날아라 날아라 하늘높이 날아라 우리 비행기”. 옛 어린 시절 종이 비행기를 접어날리며 부르던 동요입니다. 그런데 이 동요에는 이어령씨의 지적처럼 “뜨고싶은” 우리 헌국인의 숨은 정서가 담겨있어 그렇게 열심히 불렀는지 모릅니다.
또한 요즘처럼 비욘드(beyond)라는 말이 사회나 경제 그리고 과학에 이르기까지 유행처럼 사용된 적이 없습니다. 비욘드라는 말에는 우리 한국인들의 현재의 상황들을 “뛰어넘어” 벗어나고 싶은 성향을 잘 표현해 주기에 그렇게 쓰이는지 모릅니다.
한국의 교육방송인 EBS에서는 아예 비욘드라는 제목으로 첨단과학을 소개하는 다큐 프로그램을 제작 방영해 눈길을 끌고 있습니다. 불치의 질병을 뛰어넘어 치유하며 현대 과학의 한계를 뛰어넘는 유전자공학이나 우주환경공학등을 흥미있게 소개합니다.
그래서 이와 어감이 비슷한 이름으로 가명을 사용해서 전위적인 노래들을 부르는 비욘새가 인기를 끄는지 모릅니다. 뭔가 다르게 느끼게 하는 차별화를 이룩하려는 상업적 전략인지 모룹니다.
그런데 이러한 “뛰어넘기”를 원하는 것은 성경에 신앙적인 면에서도 여러군대 나타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에 돌아와 성벽을 건축하고 도시를 중수하고자 하는 느헤미야와 이스라엘 사람들을 인근의 이방인들이 업신여기고 모욕감울 줍니다. 도비야와 산발랏은 특히 사람들을 동원해 “네까짓 것들이 무엇을 할 수 있냐고 작업장에 까지 나타나 조롱합니다”
모욕감과 굴욕감을 주어 종도포기 시키려는 그들의 전략이었습니다. 마치 월남전 때 베트콩이 미군을 상대로 벌였던 조롱방송 작전과 같았습니다. 수많은 미군들이 마약에 손을 대게 되었던 직간접적 원인이 되고 결국 미군이 철수하게 된 전략입니다.
위기를 느낀 느헤미야가 이러한 적의 공략을 뛰어넘는 전략을 하나님께 아뢰고 그들의 머리에 돌리게 하는 “샤알 전략”으로 대처하고 백성들을 독려하는 정공법을 써서 뛰어넘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신앙여정에 비욘드(뛰어넘어야 할)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때 하나님께 나의 마음과 아픔을 아뢰고 정공법으로 돌파할 것을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네가 믿느냐?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현재의 상황에 주눅들지 말고 믿음으로 대처해서 정공법으로 나가라는 말씀입니다.
물 위를 걸으신 주님을 보며 베드로도 물 위를 걸어 주님께 가기를 원합니다. “주여 나를 물 위로 걷게 하소서!” “오라”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물위를 걷던 베드로가 밑의 넘실대는 물을 보자 그만 빠져버립니다. 그런 그를 주님이 잡아주시면서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느냐?”하고 다그치십니다.
우리의 신앙은 이와같이 물 위를 걷듯이 현재의 상황을 뛰어넘어 주님께서 인도하시는 길로 가는 여정입니다. 밑을 바라보아 빠지듯이 현재의 상황에 함몰되지 말고 위를 보아 비욘드(뛰어넘으라는) 당부이십니다.
오늘도 현 상황을 샤알하고 뛰어넘는 우리 모두를 기도 가운데 응원합니다. 주님이 함께 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