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 나타난 예수님의 첫번째 질문은 상당히 의미심장한 질문이었습니다. 당시 예수께서 행하신 기이한 일들을 보고 예수님의 뒤를 쫓으며 따랐던 몇몇 제자들에게 던지셨던 질문입니다. What do you seek? (무엇을 찾느냐?)
성경은 구하는 자마다 받을 것이고 찾는 자마다 찾을 것이라고 했는데 실제로 중요한 것은 과연 무엇을 구하느냐에 있습니다. 우리가 교회를 다녀도, 또 예수를 믿는다해도 과연 무엇을 기대하고 무엇을 구하느냐는 시작점이 다르면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우리의 추구가 지속될 수 있습니다.
그 당시 예수님을 따랐던 안드레와 몇몇 제자들은 자신들이 무엇을 기대하고 예수님을 따르는 것인지 자신들도 몰랐습니다. 그래서 생뚱맞은 답을 합니다. “주여 어디에 계시나이까?” 무엇을 찾느냐는 질문에 답할 바를 몰랐던 것입니다. 그러자 주님이 말씀합니다. “와 보라!”
때로 우리가운데 하나님께 기도하면서도 내가 과연 무엇을 구해야할지, 또는 무엇을 얻을 수 있울지 모르는 사람들이 있을지 모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표현하면 We don’t know what we seek and we don’t know what God has in store for us.(무엇울 구해야할지, 무엇을 하나님이 예비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그냥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의 자세가 God, why don’t you surprise me? (하나님 저를 좀 놀래게 해주시면 안돼요?). 이런 식의 자세가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우리가 믿는 것과 아는 것에 하나가 되어야 할 것을 말씀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 뜻대로 구하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아주 쉽게 미신적이고 주술적인 신앙에 빠질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존재는 인정하지만 그 능력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내 스스로 경험하는 삶을 살지 않으면서 막연히 기대하는 신앙으로 머무를 때 발생합니다. 구경꾼 신앙입니다.
구경꾼 신앙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우리의 모든 신앙활동이 자칫하면 “종교놀이”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 기독교가 처한 가장 큰 위험이 이런 종교놀이입니다. 만약 하나님과는 관계없이 그분의 뜻은 알지 못한 채, 우리끼리 기뻐하는 예배 및 교회활동을 한다면 얼마나 슬픈 일일까?
그렇기에 더욱 우리는 하나님을 “알고 믿는 것에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내가 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확실히 알고 내가 믿는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매일 말씀을 묵상하고 그분과 동행하지 않으면 우리의 간구와 신앙이 막연함에 빠질 수 있다는 사실을 꼭 기억하고 우리 자신을 경계하십시다.
오늘은 우리 주님의 질문을 다시 곰씹으며 하루를 시작합니다. What do you see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