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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두가지 생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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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두가지 생명
           
          요1:4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요한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영원한 생명이 있음을 소개합니다. 더 깊은 깨달음을 위해 생명의 두가지 다른 헬라어 단어를 사용하여 그 의미를 설명합니다. 
           
          한글 성경이나 영어 성경에는 구분없이 생명, life라고 표기하지만 헬라어 성경에는 생명을 “비오스”와 “조에”로 구분해서 설명합니다.
           
          비오스는 생물학적인 생명입니다.  태어나서 먹고 자고 성장하다가 때가 되면 죽는 동물적인 생명을 말하며 생물학을 의미하는 영어단어 biology 가 여기서 유래되었습니다. 
           
          요한은 이 단어를 사용해서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비오스)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요일 2:16)고 설명합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삶을 살아가는 인생을 의미합니다.
           
          이와 반해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을 “조에”라고 구분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잠시적이고 생물학적인 생명이 아닌 영원한 영적인 생명으로 조에를 구분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조에)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조에)이 없느니라”(요일 5:12).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조에)울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3:16).
           
          조에의 생명은 비오스의 생명과는 질적으로 다릅니다.  비오스의 생명은 죄로 타락한 인간의 유한적 생명이지만 조에의 생명은 그리스도의 생명이 함께 하는 생명, 성령이 거듭나게 한 생명,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회복한 생명을 말씀합니다.
           
          이는 구약 창세기에서 인간의 창조과정과 대비해서 보면 재미있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아담은 히브리말로 "사람"이란 뜻으로 "흙"이라는 뜻의 "아다마"에서 나온 말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아다마)으로 사람을 지으시고”(창2:7). 이는 실제 언어적 의미로 보면 먼지 (dust)입니다.  그래서 영어로 장례를 집전할 때 “흙은 흙으로 돌아갈지니라”고 표현할 때 from dust to dust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먼지로 만드신 사람에게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어” 생령으로 만드십니다.  흙이라는 유형의 질료에서 사람이 나왔지만 하나님의 호흡이 그 사람에게 불어 넣어져 생령(living soul)이 된 것입니다.
           
          먼지(아다마)로 만든 사람은 죽어서 먼지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비오스의 생명이지만 하나님의 호흡이 들어가 생령 즉 조에의 생명이 된 것입니다.  
           
          아담이 범죄함으로 조에의 생명을 잃은 것을 예수께서 회복하시고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고 선포하십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은 우리가 영원한 조에의 생명을 얻음은 물론 이 땅에서 살면서 조에의 생명을 ‘풍성하게’ 얻게 하기 위함(요10:10)이라고 말씀합니다.
           
          역으로 본다면 예수 없이 사는 인생은 비오스의 생명이기에 먼지(dust)로 살다 먼지(dust)로 끝나는 먼지같은 인생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원래 창조하신 목적대로 영원한 생명, 조에를 누리게 회복하신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이 조에를 겨자씨에 비유하십니다.  너무 조그만해서 처음에는 눈에 잘 띄지 않는 생명의 씨앗이지만 우리에게 심으신 것입니다. 이 씨앗은 영원한 조에의 생명이기에 자라서 큰 나무가 된다고 약속하십니다.
           
          주님은 이 씨앗이 잘 자라 뿌리를 내리도록 우리의 옥토를 관리하라고 하십니다. 우리 한사람 한사람이 모두 큰 나무가 되는 꿈을 꾸라고 말씀하십니다. 
           
          오 주여
          먼지같은 인생을 
          살지 않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오늘도 우리 안에 있는 조에가 
          자라도록 물을 주며 꿈을 꿉니다.
          큰 나무로 자라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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