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심을 보시는 하나님
삼상 16:7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요즘은 젊은 자매들이 형재들을 바라 보는 눈에 조금씩 변화가 발생하고 있다고 합니다. 얼마 전까지만해도 “꽃미남”이 대세였는데 최근에는 “훈남”이라는 표현이 자주 등장하고 있습니다.
“꽃미남”이 외모만 보는 추세라면 “훈남”은 어느정도 외모와 함께 훈훈한 성품을 추가한 표현입니다. 외모도 매력적이면서 성품도 좋은 사람을 칭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외모에 치중하는 기준에는 큰 변화가 없습니다.
삼성그룹의 창업주인 이병철씨는 직원채용시 모든 면접에 참여해서 소위 “관상”울 보았던 것으로 유명합니다. 중국의 당나라에서 관리 채용시 썼다는 신언서판(身言書判)을 그대로 활용했다는 기업관입니다.
신언서판의 신(身)은 외모와 신체의 건장함을 보는 것이고, 언(言)은 말솜씨를 뜻하고, 서(書)란 글씨와 글의 내용을 의미합니다. 판(判)이란 사물의 시비를 가릴 수 있는 판단력이 있는지를 보는 기준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외모를 보지않고 중심을 보신다고 말씀합니다. 중심이란 무엇을 말하는가? 훈훈한 성품인가? 단순히 우리의 내면인가? 물론 중심은 바로 우리의 마음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단순히 생각하는 마음만은 아닙니다. 좋은 성품을 의미하는 것도 아닙니다. 마음은 감정, 의지, 지성이 위치하는 장소라고 사전적인 의미로 생각할 수 있으나 성경에 마음을 히브리어로 “레바브”(lebab)라고 기록합니다.
“레바브”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출발하는 곳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확대해서 해석한다면 우리의 내면에 하나님이 자리 잡고 계신가? 우리의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즐겨하는가? 그것을 보신다는 말씀입니다.
평소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즐겨하고 늘 그분의 간섭을 초청하고 기대하는 고백의 삶을 사는 사람인가 아닌가 그 중심을 보신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기뻐한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늘 마음에 두고 그분이 목자이시기에 부족함이 없다고 고백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기뻐하시고 그 중심을 보셨다는 말씀입니다.
오 주여
우리도 마음에 하나님 모시기를 즐겨합니다.
우리의 중심을 보시옵소서
우리의 기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