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는 것들의 실상
빌4:19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최근 한국에서 인기리에 방송되던 복면가왕이 미국에 콘텐츠 계약을 맺고 수출되어 Fox TV에서 Masked Singer라는 제목하에 remake 제작 방송되어 상당한 인기를 끌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그 외에도 여러 드라마들의 콘텐츠가 수출되어 미국판으로 제작 방송되고 있다는 흐뭇한 소식입니다. 이제 중요한 것은 어떤 형식을 갖추는 것이 아니라 콘텐츠(내용)이라는 인식이 깊어져서 외양보다는 내용에 치중하는 경향이 연예물이나 기업등 사회전반에 나타나고 있습니다.
K-Pop이 이렇게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것도 동양적인 외양에 치중해 그저 호기심을 끄는 정도에서 벗어나 콘텐츠(내용)에 치중하고 이러한 콘텐츠가 외형의 제한을 뛰어넘어 세계화된 결과라 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바로 콘텐츠의 풍성한 개발에 있습니다. 그러면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실상”이라는 말씀이 바로 현대적 표현에 있어 콘텐츠에 해당하는 표현입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바라는 것만으로는 콘텐츠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바라는 것은 외양이고 형식일 뿐 실제로 결과가 나타나지 않는 제한된 상태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라는 것에 믿음이 더해지면 결과가 달라집니다.
그러한 의미가 바로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는 말씀입니다. 믿음이 실상, 콘텐츠 입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이 이루어지게 하는 실상이요 콘텐츠 입니다.
그래서 영어로는 실상을 substance(밑에 받치는 것)라는 의미의 헬라어 “후포스타시스”를 그대로 직역해서 쓰고 있습니다. 바라는 것들을 밑에서부터 받쳐 이루게 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믿음은 반드시 말씀이 선행되어야합니다. 사도바울은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인함이라”고 못을 박습니다. 그러니까 믿음의 콘텐츠는 말씀이고, 우리가 바라는 것들의 콘텐츠는 말씀으로 말미암아 생성된 믿음이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감옥에 갇혀있던 노사도에게 연보를 보내 소위 영치금을 넣어준 빌립보 교인들에게 감사하며 그들을 축복하는 바울은 물질적인 축복의 말씀을 보냅니다. “모든 쓸 것을 채우시는” 하나님의 풍성함으로 축복합니다.
이 축복의 말씀으로 형성된 믿음이 빌립보 교인들의 바라는 것들의 실상(콘텐츠)이 되어 빌립보 교인들은 항상 물질적인 부와 여유를 누리며 늘 주변의 형제 자매들을 돕는 기쁨이 가득한 교회가 됩니다.
오 주여
우리에게 항상 말씀을 주사
우리의 바라는 것들의 콘텐츠인
믿음이 있게 하옵소서
오직 믿음만이 바라는 것들의 실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