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20xYVJWWnNjRmxWZWtGNFQxaEJORlF5TlRSYWJHZDRUMVZHVUdKdWFFSmFhMUozVVZaU1dFOVhkR0ZYU0doQ1dtdG9ZV05HY0ZsYVJHaFFZbTVvY0ZscVNrZGxWbkJHWWtWV2JWSlZTVFJhUkU1clRUQXhWVkpxYUZCaWJtZ3hXa1pqZUU5R1JrbGtNMnhPVWtVME5GUXlOVFJrTVd4WVdrZDRVazFxYkhKWGJHZzBVVmRhUlZKWWFHMVNTRUUw
        • 탄식에서 찬양으로
        • eyJjdCI6IkV1bHJIeWozXC9GSld2TitHQ2RxS3dpYnkzRXJPY2RCNVVjVytRc3B0XC9xaz0iLCJpdiI6ImM4Yzg3OGIwNjUwNTlkZTk2MDQ3OTRlNDdlNzQ5NTM2IiwicyI6IjdjOTU3Yjk2ZGQyMTlkNTEifQ==| 등록일 : 2019.01.17 |조회수 : 299 |추천 : 0
        • 탄식에서 찬양으로
           
          시13:5 “나는 오직 주의 사랑을 의지하였사오니 나의 마음은 주의 구원을 기뻐하리이다”
           
          솔직함을 나타내는 영어 표현 가운데 brutally honest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야만스러울 정도로 정직한”이란 의미입니다.  시편 150편 전체를 통털어 가장 “끔찍할 정도”로 정직한 시편이 바로 다윗의 시편 13편입니다.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나를 영원히 잊으시나이까?
          주의 얼굴을 ... 어느 때까지 숨기시겠나이까?
          How long, Lord?
           
          듣기만 해도 그냥 눈물이 주루룩 흐를 것같은 탄식입니다. 기도가 오랫동안 응답되지 않고, 어려운 상황이 끝이 없이 지속되는 것 같을 때 입에서 터져 나올 수밖에 없는 안타까움의 탄식입니다.
           
          상황은 조금씩 다를지 몰라도 이런 경험을 해보신 분들이 우리 중에 많이 계실줄 압니다.  그 아프고 상한 심령으로 눈물을 쏟고 외칠 때의 심정은 참담할 따름입니다.
           
          사울로 부터 끊임없는 추격을 받으며 고달픈 도망자 신세로 오랜 세월을 지내면서 다윗은 정말 견디기 힘들었던 자신의 마음을 쏟아냅니다. 도대체 언제까지 입니까?하고 토로합니다. 
           
          이렇게 인생의 여러 굴곡을 경험한 다윗은 우리에게 중요한 깨달음을 시편51편에 나누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하신다.”
           
          이렇게 아프고 참담하게 느껴지기까지 “솔직하고 정직한” 우리의 예배와 기도는 하나님의 마음을 터치하는 제사라는 것입니다. 절대로 멸시하지 않으시고 반드시 기억하신다는 것입니다. 그 과정에 함께 하시며 우리와 함께 아파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회복시킨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많이 들었던 이야기 가운데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대한 스토리가 있습니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방을 점검하던 미국인 병사가 벽에서 발견한 글귀가 있었습니다.
           
          "Where is God?"(하나님은 어디 계시는가?) 
          자신도 이 끔찍한 곳에 수용되었다면 당연히 그렇게 생각했을 거라며 지나치던 미군 병사가 그 밑에 있는 다른 글을 발견합니다. 뾰족한 것으로 벽을 긁어쓴 글입니다.
           
          "God is nowhere”(하나님은 아무 곳에도 안 계시다)라고 쓴 것이지만 철자가 띄어져 있어 “God is now here”(하나님은 지금 이곳에 계신다)로 읽히더라는 고백입니다.
           
          북한의 정치범들이 수용된 요덕수용소에는 기독교인들이 수용되어 끔찍한 환경가운데 벌거벗긴채로 고무치마만 입고 뜨거운 용광로에서 강제노동을 당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 환경에서 그들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나직한 소리는 바로 찬송가의 멜로디였다는 어느 탈북자의 증언입니다.  비록 암울하지만 그 속에서 찬양하며 등이 굽은채로 부르는 찬송을 하나님은 어떻게 들으실까?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주님이 가깝게 느껴질 때가 있는가 하면 멀게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느낌은 우리와 주님이 실제로 어떤 상태에 있는가와는 관계가 없습니다.
           
          우리 영혼의 실제 상태는 우리가 어떻게 느끼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어떤 분이며 우리가 그분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주님을 간절히 찾는다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주위 환경과 사람을 바라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의 영적인 눈이 뜨인다면 환경이 어떠할지라도 찬양할 수 있는 마음이 되는 것이 바로 시편13편에 나타난 다윗의 마무리입니다.
           
          나는 오직 주의 사랑을 의지하였사오니 
          나의 마음은 주의 구원을 기뻐하리이다.
           
          탄식에서 찬양으로 바뀐 찬송은 두 손을 주께 높이 든 찬양입니다.  그리고 눈물이 절로 날 수밖에 없는 찬송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에게서 구하시는 예배입니다.
           
          내 손을 주께 높이 듭니다 내 찬양받으실 주님
          내 맘을 주께 활짝 엽니다 내 찬양받으실 주님
          슬픔대신 희락을 재 대신 화관을
          근심대신 찬송을 찬송의 옷을 주셨네.
           
      • SNS내보내기
        이 게시물을..
        추천
        인쇄
        URL
        error 신고
        cancel

        게시글 신고

        작성자 신고

      이전글 | 다음글

      목록

    • 글 작성시 등록하신
      비밀번호를 입력해주세요.
    • 확인취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