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소망
시39:7 “주여 이제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
인도에서 미국으로 출발하기 바로 몇시간 전에 마지막으로 방문해 기도하며 복음을 전했던 곳은 뭄바이의 신흥 슬럼가였습니다. 인도에는 카스트 제도가 뼈 속깊이 자리 잡아 신분과 빈부의 차별에 묶인채 소망없는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수없이 많았습니다.
쓰레기더미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집은 사람들이 사는 곳이라고는 도저히 말을 할 수 없는 “닭장촌”이었습니다. 같은 인도인들끼리도 들어가기를 꺼려하고 습격을 두려워하는 외인출입 금지구역에 그들은 자신들만의 세상을 살고 있었습니다.
자신들이 가난한 사람들이라는 것을 진정 느끼지 못한채 살아가는 가난한 그들입니다. 마치 부유한 사람들이 부유한 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그냥 편안함 속에 갇혀 사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들은 가난에 찌들린채 묶여살고 있었습니다.
병원이라고 이름 붙여있는 곳에 누어있는 환자들을 방문했습니다. 도저히 병원이라고 말을 하기가 부끄러운 곳에 누어 하루에 한두번 투약을 받을 뿐 마치 죽음을 기다리는 집단 대기소와 같은 곳이었습니다.
베데스다 연못가에 천사가 내려와 연못의 물을 움직이게 할때 먼저 내려가 낫고자 속절없이 누어있는 수많은 병인들, 다리 저는 사람, 혈기 마른 사람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예수께서 느끼셨던 마음이 다가오며 눈물이 절로 납니다.
소망 없이 사는 인생이 정말 어떤 인생인지를 절로 느끼게 합니다. “주여 이제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라고 고백하는 시편기자의 말씀이 어떻게 나올 수 있는가를 절로 깨닫게 합니다.
인생에 거는 우리의 모든 소망이 깨어지고 무너질 때 다가오는 하나님의 소망을 우리는 비로소 깨닫게 됩니다. 왜 테레사 수녀가 미국에 와서 마음의 무거운 짐과 병을 자신에게 토로하는 많은 자매들에게 인도, 캘커터로 오라고 했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게 하는 장면입니다.
그들에게 손을 얹고 기도합니다. “하나님 저들에게 하나님의 소망을 깨닫게 해 주옵소서” 그냥 주체할 수 없게 눈물이 흐릅니다.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우리의 한계를 알면서 흐르는 안타까운 마음이 눈물로 녹아내립니다.
여기저기서 자신들을 위해서도 기도해달라고 사람들이 다가옵니다. 병원을 지키는 사람들이 뭐라 소리를 지르며 호르라기를 붑니다. 우리를 제지하며 나갈 것을 종용합니다.
그들을 뒤로 하며 떠밀린듯 나오는 우리들의 발걸음이 마냥 무겁기만 합니다. 절로 우리의 입에서 신앙의 고백이 터져나옵니다. 인도에 남겨진 가난한자, 억눌린자, 묶인자를 떠올리며 올리는 이 아침의 기도이기도 합니다.
주여 이제 우리가 무엇을 바라리이까?
우리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