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음성
요20:14 “(마리아는) 뒤로 돌이켜 예수께서 서 계신 것을 보았으나 예수이신 줄은 알지 못하더라”
얼마 전 한남체인에 들렀다가 Tres Dias 주말을 함께 섬겼던 한 자매님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너무 젊고 아름다운 모습의 자매여서 잠시 누구인지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자매님들의 경우 화장에 따라 달라보이는 수가 있어 알아보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목사님 저 xx에요”하는 소리에 아차 싶어 미안함을 전했습니다. 몰라보는 무례(?)를 저지른 것입니다.
그러면서 마음 속에 다가온 장면이 부활하신 주님을 알아보지 못했던 마리아의 당혹감이었습니다. 그렇게 존경하고 사랑하던 선생님이 로마 군병에게 끌려가 십자가에 달리신 그 과정을 지켜봤던 그녀였습니다.
시신을 거두고 싶었던 마음에 새벽미명에 무덤으로 달려갔지만 빈 무덤을 보며 황당하여 어쩔줄을 모를 때 주님이 나타나신 것입니다. 그 분을 알아보지 못한 채 동산지기인줄만 알고 묻습니다.
그때 “마리아!”하고 부르는 그 소리에 비로소 주님을 알아보고 “랍오니?”하고 묻습니다. 모습은 알아볼 수 없었지만 그 음성은 잊을 수가 없었던 바로 그 음성이었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뵙게 될 때 그 모습은 우리가 마음으로 그리던 모습과 전혀 다를 수 있습니다. 특히 잃은 양을 찾아 앉은 웨이브가 있는 금발의 긴 머리 백인 청년의 모습은 아닐지 모릅니다.
화가들의 상상에서 그린 그림 속의 멋진 모습은 아닐 것입니다. 그분은 오히려 이사야 선지의 말씀대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사53:2)이 없는 모습이실 것입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주님의 음성을 기억했습니다. 랍오니는 랍비의 변형된 호칭으로 “큰 선생님”이란 의미를 지닌다고 학자들은 설명합니다. 그러나 그 호칭은 마치 선생님을 “샘”이라고 부르는 요즘 아이들의 호칭처럼 친밀한 느낌을 주는 호칭이었을것입니다.
마리아가 기억했던 주님의 음성! 그 음성을 우리도 기억하기 원합니다. 그분의 모습은 알아볼 수 없더라도 “아무개야!”하고 우리의 이름을 부르실 그 음성은 꼭 기억하기 원합니다.
그러기 위해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암송하면서 주님의 다가오심에 친밀하기 원합니다. 기도 가운데 주님과 교제하면서 주님의 음성에 귀기울이고 그분의 음성에 익숙해지기 원합니다.
오 주여
오늘도 주의 음성에 귀기울이기 원합니다
우리의 이름을 부르실 때
지나치지 않기를 원합니다.
주님의 음성을 사모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