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차 세계대전 때 코리 텐 붐 가족은 유대인을 숨겨준 죄로 수용소로 붙들려갔습니다. 코리와 언니 벳시가 처음 수용소 막사에 들어갔을 때 막사는 사람과 벼룩으로 가득차 있었습니다.
그날 아침 그들이 읽고 묵상한 성경구절은 “항상 기뻐하라 쉬지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였습니다. 말씀을 나누며 언니 벳시는 코리에게 하나님께 세세한 부분까지 감사하자고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코리는 다른 모든 문제는 다 감사할 수 있어도 벼룩에 대해서만은 감사하지 못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언니는 벼룩도 감사를 드리자고 코리를 달랬습니다.
코리는 마지못해 기도합니다. “하나님! 벼룩을 주셔서 감사해요.” 그런데 그 후, 몇 달 동안 그들은 막사에서 독일군의 간섭이나 감시없이 자유롭게 성경공부도 하고 기도회도 열 수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독일군이 벼룩 때문에 막사 안으로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 사실을 깨닫자 코리는 벼룩을 주신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하며 기뻐하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진정한 감사는 기쁨을 수반합니다. 이것이 감사와 기쁨의 역학적 관계입니다. 이것을 깨닫게 하는 것이 은혜입니다.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로 모든 것이 뒤틀려 버린 이 상황에도 감사하며 기뻐할 수 있게 하는 것은 오직 은혜뿐입니다.
우리가 어떤 문제 가운데 있을지라도 하나님은 여전히 모든 상황을 통제하고 그분의 선한 목적에 따라 합력하여 선을 이루십니다. 이것이 우리가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에도 감사하며 기뻐할 수 있는 이유입니다.
삶에는 성공도 있고 실패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실패할 때 어떤 자세를 가지느냐 하는 것입니다. 실패해도 기쁨을 잃지 않고 의연히 대처하면 삶은 감동이 되고, 축복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왜 여자들이 남자들보다 오래 삽니까? 여자들은 남자들보다 몸과 마음이 약합니다. 특히 출산을 경험한 이후부터는 몸의 기가 많이 빠지고, 몸의 곳곳이 아프다고 호소하는 여자들이 많습니다.
그래도 오래 사는 이유는 황수관 박사의 논리에 의하면 여자들이 더 잘 웃고 잘 울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작은 일에 더 감동하고 고난 중에도 기뻐할 줄 아는 것은 건강의 비결이라는 주장입니다.
은혜가 고이면 감사와 기쁨이 생기고, 은혜가 메마르면 원망과 불평이 생깁니다. 생각할 때마다 원망하고 기도할 때마다 억울해 하고 분해하면서 '왜 나만 이러냐?'고 하소연하는 것은 은혜가 메말랐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은혜가 고이면 생각할 때마다 감사하고 기도할 때마다 기쁨으로 합니다. 은혜는 감사를 낳고 감사는 기쁨을 낳으며 기쁨은 행복을 낳습니다. 이러한 은혜는 오직 예수로 말미암습니다.
그래서 베드로 사도는 말씀합니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그리스도의 사랑을 가지고 있는 사람의 특징은 기뻐한다는 것입니다.
그 기쁨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 말미암은 거듭남에 기초한 기쁨이며 하늘에 간직하신 썩지 않은 기업을 바라보는 기쁨이고 믿음을 통해 지금도 우리를 보호하시는 능력을 누리는 기쁨입니다. 세상이 줄 수도 없고 알 수도 없는 기쁨, 그 누구도, 그 무엇도 흔들 수 없는 기쁨, 고난으로 인해 눈물을 흘리다가도 영혼 그윽히 깊은데서 조용히 흘러나오는 기쁨, 때로는 가슴 벅차게 터져나오는 기쁨.
그 기쁨과 감사가 우리 가운데 넘치는 오늘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오직 은혜로 말미암습니다.
오 주여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소서 우리 영혼이 주께로 피하되 주의 날개 그늘 아래에서 이 재앙들이 지나기까지 피하리이다. 이 아침의 기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