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거지가 누추한 모습으로 볼펜을 팔고 있었습니다. 지나가던 어느 회사의 사장이 길을 가다 돌아와서 이렇게 말합니다. “사장님, 볼펜 한 자루 주세요. 얼마에요?”
사장님이라는 말에 깜짝 놀란 거지는 “아…. 그냥 내키는 대로 주시면….”하고 얼버무립니다. 그러자 사장이 힘을 주어 말합니다. “아닙니다. 당신은 사장님이에요.”
“정당하게 볼펜을 팔아서 사업을 하는 사장입니다. 저도 가난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때부터 이미 저는 한 회사의 사장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말한대로 되었죠.”
“당신도 정당하게 볼펜을 팔아 돈을 받는 사장이고 지금 사업을 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런데 사장이 볼펜의 값을 정확히 말해주지 않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러며 볼펜을 사고 돈을 놓고 갔습니다. 그 거지는 한참 그 말을 곰씹으며 되뇌였습니다. “사장? 내가? 사장이다. 그래 난 사장이야. 난 지금 장사를 하는거야. 나는 사장이야.”
그리고 몇 년 후 그 거지도 재기에 성공하여 많은 돈을 벌게 되었고 그때의 그 사장을 찾아가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고 합니다.
사람을 바꾸는 것은 큰 것이 아닙니다. 조그만 시작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새로운 시작”입니다. 나에게 들려진 말씀을 내가 키워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모든 것이 바뀌기 시작합니다.
성경은 그것을 “환상 또는 꿈”이란 말로 표현합니다. 요즘 세대에서는 “비전”이라는 영어 단어를 빌려서 표현합니다. “무엇을 보는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꿈의 언어”입니다. 새로운 시각을 갖게합니다.
이사야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상기시키고 있는 것은 하나님의 존재입니다. 땅의 현실이 너무 힘겨워 고개를 자꾸 숙이다 보니 하늘을 잊어버리고 살던 그들에게 말씀을 전합니다. 새로운 시각, 꿈을 전한 것입니다.
“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나니” 죄와 절망의 중력에 이끌려 추락을 거듭하던 영혼에게 비전을 심어주고, 은혜의 날개를 달아주고 있습니다. 삶의 무게에 짓눌리면 하나님을 잊기 쉽습니다
흑암과 공허와 혼돈 속에서 빛을 이끌어내는 분을 잊으면 우리 삶은 잿빛으로 변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어떤 일을 도모하기도 전에 하나님은 새로운 삶을 창조하십니다.
하나님은 역사를 새롭게 하시고, 행복을 누리는 백성을 창조하십니다. 새로운 시각을 말씀의 씨앗으로 주시고 시작하십니다. 사람은 무엇을 듣고, 무엇을 보는가에 따라 살기 때문입니다.
야곱의 눈에 보인 하늘과 땅을 잇는 사닥다리는 갈 바를 잃었던 “루스”에서 “벧엘”을 발견하게 합니다. 환경과 장소가 바뀐 것이 아닙니다. 그가 바라보고 나아갈 새로운 시각을 발견한 것입니다.
엘리사의 눈에 보인 불말과 불수레는 그로 하여금 자신의 옷을 찢고 땅에 떨어진 엘리야의 겉옷을 집어들며 담대히 선포하게 합니다. “엘리야의 하나님 여호와는 어디 계시나이까?” 갑절의 영감이 임하는 장면입니다.
요단에서 죄인들과 함께 세례를 받으신 예수님의 눈에 보인 열린 하늘, 비둘기처럼 임한 성령 그리고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는 하나님의 음성은 그분으로 하여금 드디어 사역을 시작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시선을 그분의 꿈에 맞추기를 원하십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꿈과 소망을 잃지 말고 삶이 우리를 잠시 속일지라도 결코 좌절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세상이 뭐라 해도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사람으로 살아갈 용기를 잃지말라 하십니다. 우리가 주님의 뜻을 받들기 시작하면 주님께서 친히 우리 삶을 인도하실 것입니다.
일상의 매 순간 하나님의 은혜가 어떻게 다가오는 지를 예민하게 알아차리라 하십니다. 그리고 더 많이 감탄하고, 더 많이 감사하며 살아가라 하십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의 이미지를 한국 록 음악의 대부라고 불리는 신중현씨가 “아름다운 이 강산”이라는 노래로 표현했습니다. 꿈과 희망을 대중가요로 노래합니다.
하늘은 파랗게 구름은 하얗게
실바람도 불어와 부풀은 내 마음
나뭇잎 푸르게 강물도 푸르게
아름다운 이곳에 내가 있고 네가 있네
손잡고 가보자 달려보자 저 광야로
우리들 모여서 말해보자 새 희망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