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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족"과 "조금만 더"
        • eyJjdCI6IkJnejlNWHdDZFg1WDZ1d0JmQTNHVHk0MUZZXC9SZm9ONXlQKzE0TUVXTDFVPSIsIml2IjoiN2NkZmJhNGE3MTdhOTYzYTQ5MGFlY2UxMDBkNjAzYTUiLCJzIjoiNmQzOTY1NTAwODA4MTRlZiJ9| 등록일 : 2021.06.30 |조회수 : 210 |추천 : 0
        • “자족”과 “조금만 더”

          빌4:12 “나는..그 어떤 경우에도 스스로 만족하게 생각하는 비결을 배웠습니다”(현대인의 성경)

          엊그제 딸아이 가족이 와서 하루를 묵고 갔습니다. 오랜만에 집이 시끌벅적하고 생기가 돌았습니다.  어제는 손녀딸들 아침 점심 저녁 세끼니를 준비해서 먹이느라 보통 바쁜 게 아니었습니다.

          아침은 씨리얼, 점심은 미역국에 불고기, 저녁은 짜장면을 메뉴로 해서 준비했습니다. 그중의 백미는 물론 짜장면이었습니다. 코로나로 식당이 오랫동안 문을 닫았을 때, 가장 먹고 싶었던 음식 중 하나였던 짜장면 만드는 법을 익힌 것은 최근입니다.

          짜장을 준비하면서 혹시라도 맛이 없어 입맛이 까다로운 손녀딸들이 입에도 안대면 무엇을 따로 준비하지? 하고 머리에는 나름대로 바쁜 계산이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드디어 짜장면이 완성이 되어 식탁에 올려놓자 아이들의 눈에 빛이 났습니다. “그럴 듯 했던 모양”입니다. 한 그릇을 다 먹고 면을 더 달라고 하는 아이들의 요구에 작은 기쁨을 느끼며 국수를 덜어주었습니다.

          작은 기쁨은 “자족하는 삶”에 가장 중요한 비결입니다. “자족”은 우리 스스로 찾고, 배우고, 할 수 있는 몇가지 안되는 덕목 중의 하나 입니다. 자족은 ‘작은 기쁨’을 누리는 삶입니다. 그러나 ‘작은 기쁨’에서 멈춰야 합니다.

          멈추지 않고 “조금만 더”로 나가면 그때부터는 기쁨이 아니라 ‘고생’이 됩니다. 어제 저녁 손녀 딸들이 집으로 갔기에 망정이지 하루 더 있었다면 그때부터는 일상이 엉망이 되고 고생이 시작되었을 것입니다.

          자족하는 삶과 “조금만 더”를 비유로 가르친 ‘키에르케고르’의 오리 비유가 있습니다. 그는 우리 인생의 한 면모를 철을 따라 이동하는 오리에 비유합니다. 혹한을 피해 오리는 남으로 이동합니다.

          모든 이동준비를 마친 오리들은 늦은 가을 저녁 파티를 합니다. 큰 농장에 모여 곡식으로 잔뜩 배를 불리며 다음 날에 펼쳐질 대이동을 위해 힘을 비축합니다. 이윽고 출발시간이 다가왔습니다.

          이때 곡식에 한창 맛이 들린 살찐 오리 한 마리가 게걸스럽게 먹으면서 말합니다. “아직 맛있는 곡식들이 많이 남았으니 나는 조금 더 먹고 뒤따라 가겠소“ 이윽고 다른 동료들은 다 먼길을 떠났습니다.

          그 오리는 하루만 더 머물면서 영양을 섭취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하루가 지났지만 남아있는 곡식을 보면서 하루만 더,하루만 더, 결국 며칠이 훌쩍 지나갔습니다.

          이렇게 하루하루 더 연기하다가 결국 어느날 눈보라가 천지를 뒤덮고 말았습니다. 오리는 더 이상 머물 수 없음을 알고 드디어 길을 떠나기 위해 비상을 시도하지만 불행하게도 더 이상 날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 오리는 음식을 너무 많이 섭취해서 날을 수 없을 정도로 살이 쪘기 때문입니다. 결국 그 오리는 한번 날아보지도 못하고 비참히 얼어죽고 말았다는 오리 이야기입니다.

          그는 이 “조금만 더”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가치관이 아닌가 지적합니다. 우리가 보기에는 결코 만족할 수 없었던 상황에서 바울은 “나는 일체의 자족하는 비결을 배웠다”고 선언합니다.

          자족하는 삶은 외부에 있지 않습니다. 먼저 내부의 영혼의 만족이 있어야 합니다. 바울은 주안에서 영혼의 기쁨으로 삶에 자족하고 있습니다. 우리 현실의 삶에서 우리가 주안에서 기쁨을 확인하는 때가 언제일까?

          바울은 성도들과 교제를 통한 기쁨을 경험할 때였다고 단연히 말합니다. “내가 주안에서 크게 기뻐함은 너희가 나를 생각하던 것이 이제 다시 싹이 남이니 너희가 또한 이를 위하여 생각은 하였으나 기회가 없었느니라”

          감옥 안에서 바울이 받은 “위로” 그것은 지극히 작은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 작은 것 속에 위로를 받았고 그것으로 기뻐합니다. 작은 기쁨은 자족하는 삶의 키입니다.

          이제는 작은 기쁨을 찾고 누리는 삶을 살아야 할 때입니다. 우리를 서로 기억하여 주는 사람이 있어 기뻐하며 감사하는 것으로 시작할 수 있습니다. “조금만 더” 큰 것을 기대하면 자족을 놓치고 맙니다.

          조그마한 선물을 나눌 수 있음으로 기뻐하고, 서로 기도하여 주는 사람이 있음으로 기뻐하고, 짧은 텍스트나 카톡으로 전하는 위로의 말로 누리는 작은 기쁨입니다.

          김상용의 “남으로 창을 내겠소”를 나직이 읊조리며 하루를 시작하고 싶습니다.

          남으로 창을 내겠소.
          밭이 한참 갈이
          괭이로 파고
          호미론 풀을 매지요.

          구름이 꼬인다 갈 리 있소.
          새 노래는 공으로 들으랴오.
          강냉이가 익걸랑
          함께 와 자셔도 좋소.

          왜 사냐건
          웃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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