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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떼창을 부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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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떼창을 부르십시오

          시43:3 “주의 빛과 주의 진리를 보내시어 나를 인도하시고”

          한국에 초청되어 콘써트를 하는 외국 가수들이 놀랄 정도로 깊은 감동을 받는 것은 공연장에서 자신들의 곡을 따라부르는 한국팬들의 “역대급 떼창” 때문이라고 합니다. 

          영국의 어느 록그룹은 한국팬들의 극성맞은 떼창에 놀라서 공연을 중단하고 “떼창 적당히 하면 안될까요?”하고 요청을 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떼창은 이제 공연관람 문화가 되었다고 합니다.

          시편 42편과 43편은 서로 이어지는 한 편의 연작 시로 “떼창” 노래입니다. 고라 자손의 마스길로 인도자를 따라 부르는 노래입니다. “가르쳐 따라 부르는 떼창”이란 뜻입니다.

          시편 43편은 특히 “어찌하여”와 “보내시어”로 이어지는 탄원 시의 성격을 띤 떼창입니다. 이는 마치 히브리 민족이 힘들고 지치고 어려울 때, 떼창으로 부르는 “국민 가요”입니다.

          히브리어로 “어찌하여”는 “라마”로 영어로는 ‘Why’입니다. 이 “어찌하여”라는 탄식이 짧은 시편에 4번 나옵니다. “주는 나의 힘이 되신 하나님이시거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내가 어찌하여 원수의 억압으로 말미암아 슬프게 다니나이까?”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상황입니다.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운명이 꼬여 몹시 힘겨울 때, 어려운 일이 엎치고 덮칠 때 떼창으로 “어찌하여”하고 부르짖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우리의 삶을 주관하심을 믿기에 그분께 “떼창”으로 “떼를 쓰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찌하여”는 결코 불신앙이 아닙니다. 오히려 주를 의지하고 믿기 때문에 탄식하며 더 간절히 부르짖게 되는 것입니다. 숱한 믿음의 선진들도 “어찌하여”하며 탄식하다 주를 만났습니다.

          상황이 어려울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을 때, “어찌하여”하고 간절히 떼창으로 부르짖는 겁니다. 우리의 탄식이 깊을수록 우리와 하나님과의 만남도 깊어집니다.

          떼창은 이제 “어찌하여”에서 “보내시어”로 급물살을 타듯이 바뀝니다. “주의 빛과 주의 진리를 보내시어 나를 인도하시고 주의 거룩한 산과 주께서 계시는 곳에 이르게 하소서”

          5.18광주 민주 항쟁 때 있었던 일입니다. 정보수집 밀령을 받고 대학생들의 동태를 살피던 민간인 차림의 군인 한 사람이 대학생들에게 붙잡혔습니다. 몸을 수색당한 그에게서 권총이 나왔습니다.

          그의 정체가 탄로나고 격노한 대학생들은 두 손을 머리 뒤로 돌려 얹게 한 후에 뺏은 권총에 총알을 장전하였습니다. 군인은 아무 변명도 못하고 대학생들에게 사살될 것을 직감했습니다.

          순간, 그는 지그시 눈을 감은 채 “어찌하여”의 노래를 잠잠히 불렀습니다. 뺏은 권총에 총알을 장전하고 그에게 총부리를 겨누던 대학생이 갑자기 당황했습니다. “죽기 바로 직전인데 노래를?”

          주 안에 있는 나에게 딴 근심 있으랴
          십자가 밑에 나아가 내 짐을 풀었네
          주님을 찬송하면서 할렐루야 할렐루야
          내 앞길 멀고 험해도 나 주님만 따라가리

          그 때 옆에 있던 다른 학생이 권총을 제지하면서 그 군인에게 물었습니다. “너, 교회 다니냐?” 그는 찬송을 멈추고 대답했습니다. “신학대학에 다니다 휴학하고 입대했다.”

          그 순간, 권총을 제지했던 대학생이 말했습니다. “음... 전도사님이시군. 전도사님을 이런 식으로 죽일 수는 없지...” “어찌하여”의 찬송이 “보내시어”로 옮겨진 것입니다.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셨듯이 주님은 지금도 주의 빛과 진리, 즉 성령과 말씀으로 우리를 이끄십니다. “주의 거룩한 산과 주께서 계시는 곳”에 이르게 하십니다.

          주의 빛과 진리는 언제나 우리를 성산과 성전으로 인도합니다. 예배가 있고, 찬송이 있고, 기도가 있는 그곳으로 우리를 이끄십니다. 그곳은 바로 “기쁨의 언덕”으로 우리가 떼창을 부르며 나아가는 곳입니다.

          어떤 형편에서든지 함께 하시는 하나님,
          어떤 상황에서든지 동행하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이 우리를 어디로 인도하시든지,
          주님이 주시는 평안속에서 떼창을 부르십시오.
          주님이 함께 하십니다.

          오 주여
          어찌하여 이런 일이 일어납니까?
          어찌하여 이 어려움을 감당케 하십니까?
          떼창을 부르며 주 앞에 나아갑니다.
          주의 빛과 진리를 보내시어
          우리로 넉넉히 이기게 하소서
          이 아침의 기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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