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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이 막히지 않고 흐르게 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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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이 막히지 않고 흐르게 하십시오

          요13:34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유튜브에 EBS 다큐 프라임 “엄마가 달라졌어요”라는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한 엄마의 지독한 편애를 치유하는 스토리입니다. 딸은 그렇게 사랑하면서 아들만 보면 머리를 쥐어박고 소리를 지르는 엄마입니다.

          엄마는 자신도 그렇게 하지 않으려고 하지만 잘 안 되어 고통스러워했습니다. 그 원인을 찾기 위해 엄마의 과거 기억을 되짚어보니 엄마는 자신의 부모님을 용서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남동생만 사랑한 자신의 엄마가 미웠고 남동생도 미워했던 것입니다. 어릴 때 그 “막힌 사랑”의 기억때문에 자기 아들이 과거의 남동생으로 투영되어 느껴졌고, 딸은 불쌍한 자신의 모습처럼 투영된 것입니다.

          이렇게 사랑이 막히고 흐르지 못하는 그 엄마에게 부모를 용서하도록 인도합니다. 용서는 막힌 담을 허물고 사랑을 흐르게 하는 능력입니다. 그녀는 자신이 그런 것처럼 어머니도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눈물을 흘리며 어머니를 용서합니다. 그리고 아들을 보니 이전과는 다르게 사랑스러워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아들을 껴안고 미안하다며 눈물을 쏟습니다. 엄마에 대한 용서가 막혔던 사랑을 흐르게한 것입니다.

          한편, 남동생은 미워하고 자신만 사랑해주는 엄마를 보면서 딸은 마음이 편했을까? 그렇지 못했습니다. 엄마의 자신에 대한 편애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늘 동생에게 죄책감을 느껴왔던 것입니다.

          사랑은 위로부터 흐르는 것이기에 자신을 사랑해주는 사람의 “삐뚤어진 편애”는 온전한 감사를 할 수 없게 합니다. 그런 막힌 사랑을 받으며 자라면, 다른 누구를 온전히 사랑할 수 없는 마음이 됩니다.

          사랑 받는 것이 “공정”하지 못하면 진실된 감사를 할 수 없게 됩니다.  그래서 사랑이 흐르지 못하고 막히는 것입니다. 만약 부모에게 사랑을 받지 못해 미워하던 사람이 나를 사랑한다면 어떻게 될까?

          물론 자신은 진심이라고 믿겠지만 그 사람의 사랑은 막혀있는 사랑입니다. 그런 사람의 사랑은 육적인 에로스의 사랑이기에, 흐르는 사랑은 아니었음을 깨닫게 될 날이 올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주셨던 새계명은 제자들이 듣기에 별로 새로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사랑하라”는 말은 전혀 새로울 것이 없었습니다. 율법의 대전제요, 지금까지 예수님이 수없이 말씀하신 내용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이 말씀을 하신 의도가 있습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에 그 비밀이 담겨있습니다. 주님의 사랑은 “먼저 용서 해놓고 기다리시는 사랑”입니다.

          이는 마치 먼 타국으로 떠난 탕자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아버지의 사랑입니다. 아버지의 사랑은 탕자가 용서를 구하기도 전에 먼저 용서를 해놓고 기다리는 사랑입니다. 그래서 그 사랑에는 전혀 막힘이 없습니다.

          언제나 용서하고
          언제나 용납하고
          언제나 기다려주는
          십자가의 사랑입니다.

          그 사랑을 깨닫고, 그 사랑으로 “서로 사랑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전혀 기대할 수 없는 상황에 있는 제자들의 포텐셜을 보시고 먼저 용서 해놓고 사랑하신 그 사랑입니다. 그렇기에 그 사랑에는 감동이 있습니다.

          그 사랑을 맛본 사람은 형제 자매와 혐의가있으면 자존심을 버리고 먼저 달려가 용서를 구할 수 밖에 없습니다.  참 사랑에는 막힘이 없기에 먼저 용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떠나신 후, 위기에 직면할 제자 공동체를 지킬 수 있는 힘은 이런 사랑을 서로 나누는 것에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새 계명’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코로나 펜데믹으로 어려움에 처해있는 교회가 어떻게 위기를 넘어설 수 있을까? 이렇게 서로 사랑하는 것으로 가능합니다. 가정에 찾아온 어려움을 어떻게 이겨낼 수 있을까? 이렇게 서로 사랑하는 것으로 이겨냅니다.

          서로 용서하고, 서로 이해하고, 서로 사랑하는 것만이 공동체를 지키는 것입니다. 불평은 공동체를 무너뜨립니다. 그러나 용서는 공동체를 세우는 접착제입니다.

          지금은 우리 모두가 한마음으로 이렇게 사랑할 때입니다. 그래서 우리도 “우리가 달라졌어요”하고 자랑해야 할 때입니다.

          오 주여
          먼저 용서 해놓고 기다리는 주의 사랑 앞에
          울며 불며 나올 수 있게 하옵소서
          그 사랑 깨닫게 하소서
          그 사랑으로 우리도 서로 사랑하게 하소서
          이 아침의 기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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