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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너무 아픈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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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너무 아픈 사랑

          아가8:6 “사랑은 죽음 같이 강하고”

          이미 고인이 된 김광석의 노래 가운데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이라는 곡이 있습니다. 최근에 많이 리메이크 되어 불려진 노래입니다.

          그대 보내고 멀리
          가을새와 작별하듯
          그대 떠나 보내고
          못다한 말들 그 아픈 사랑
          지울 수 있을까
          못다한 사랑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사랑한다는 것은 아픔을 수반합니다. 김광석은 역설적인 표현으로 사랑의 아픔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내가 하기로 한 사랑은 그 사랑 때문에 잃어야 하는 고통을 넘어서야 합니다.

          우리의 신앙은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것으로 세상 것들을 잃을 수 있는 ‘아픔이 더는 아픔이 아닌 사랑’입니다. “죽음 같이 강한 사랑”입니다. 십자가의 사랑이 그것을 말씀합니다.

          사랑의 특성은 빠지는 것입니다. 빠지지 않는 사랑은 사랑이 아닙니다. 사랑의 힘은 우리로 하여금 빠져들게 합니다. 사랑은 강렬하기 때문에 그 속에 빠져듭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사랑의 절정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십자가를 통해 꽃을 피웠습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를 만나면 사랑의 용광로 속으로 빠져 들어갑니다.

          신앙이 자란다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깊어져간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면, 하나님의 사랑에 빠져들게 됩니다. 그 사랑은 “죽음 같이 강한 사랑”입니다.

          “적과 흙”의 스탕달과 함께 19세기 프랑스의 대표적 낭만주의 작가, 빅토르 위고의 소설 “노틀담의 꼽추”는 “너무 아픈 사랑” 을 한 흉측하게 생긴 꼽추의 이야기입니다.

          이 작품에는 거지 왕의 어여쁜 양녀, 에스메랄다를 사랑한 세 인물이 등장합니다. 젊고 멋진 근위대장 풰뷔스, 마흔이 넘어 처음 사랑에 빠진 교회의 주교 프롤로, 그리고 흉측한 꼽추 콰지모도입니다.

          아마도 에스메랄다는 누구에게 자신의 마음을 주어야 하는지 몰라서 진정 누가 나를 사랑하는지 찾기를 원하는 우리 자신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우리들은 진정 나를 사랑해주는 그분을 찾기 전까지는 이 세상에서 마음에 진정한 평화를 누릴 수가 없습니다. 위고가 작품에 등장시킨 근위대장 풰뷔스는 국가를 대변합니다.

          국가는 우리를 사랑한다고 말하며 자신을 위해 목숨을 바쳐줄 것을 요구합니다. 우리가 태어난 목적이 국가발전을 위해서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국가는 나의 희생을 기억해주지 않습니다. 내가 어려움에 빠졌을 때 나를 위해 희생해 줄 준비도 되어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종교를 상징하는 프롤로 주교가 나옵니다. 프롤로를 통해 위고는 그 당시 종교의 이중성을 고발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역사상 얼마나 많은 이들이 잘못된 종교의 이중성 때문에 인생을 망치고 죽이고 죽었습니까?

          종교 또한 나에게 무언가 희생할 것을 요구하지만 정작 내가 쓰러질 때는 나를 위해 희생하지 않습니다. 에스메랄다에게 사랑을 보여주었던 인물은 꼽추 콰지모도입니다. 그는 그녀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을 아까워하지 않습니다.

          작가는 이 볼품없는 콰지모도만이 우리 인생에서 유일하게 믿어도 괜찮은 목숨을 바치는 사랑을 보여준 그리스도이심을 상징적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를 믿는 것은 종교가 아니라 생명임을 말한 것입니다.

          우리가 매일 아침 대하는 말씀은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해 주신 “너무 아픈 사랑”의 고백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이름을 아십니다. 술람미 여인을 아신 것처럼 아십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우리의 상처가 무엇인지, 우리의 과거와 현재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십니다. 그리고 사랑하십니다. 마치 술람미 여인을 부르시듯 우리를 부르십니다.

          이제는 우리가 그 “너무 아픈 사랑”을 우리 자신의 버전으로 재해석하고 그 노래를 하나님께 불러드릴 시간입니다.

          오 주여
          이 아침에 하나님의 “너무 아픈 사랑”
          그 고백을 듣습니다.
          이제 우리 차례입니다.
          그 사랑에 사로잡히기 원합니다.
          우리의 고백이 따르게 하소서
          이 아침의 기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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