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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yJjdCI6ImJ0QUVwemdSY09NejJvNCtmSGhBbFJKQk9CRk1MUmtFdEpSZm5QXC9XOUpNPSIsIml2IjoiMjRiNzkxODJkODNiY2JhODhkMWNkNTMwZmJlYjFkM2MiLCJzIjoiYWYyYmEwNDNlYTc3ZmU4NyJ9| 등록일 : 2021.07.30 |조회수 : 142 |추천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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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자 콤플렉스
삼상18:7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지난 40년 동안 수많은 영화들이 제작, 상영 되었지만 그중 “아마데우스”는 특별히 기억되는 몇 안되는 영화 중 하나 입니다. 이미 40년 전에 제작된 영화이지만 지금 다시 봐도 압권입니다.
모차르트의 화려하고 파란만장한 생애를 현란한 영상에 그의 음악과 함께 경쟁 음악가 살리에리의 관점에서 그리는 음악 사극 대작입니다. 영화는 궁정 음악가 살리에리의 회상 형식으로 진행됩니다.
아마데우스는 물론 모차르트의 이름이며 영화는 그의 일대기를 그리지만 그 영화의 주인공은 “영원한 이인자” 살리에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만큼 영화는 이인자 살리에리의 처절한 아픔을 담고 있습니다.
음악을 너무도 사랑하지만 재능에 한계를 느낀 살리에리는 절망합니다. 모차르트를 곁에서 지켜보며, 하나하나 작품이 나올 때마다 그의 작품에 대하여 찬양을 마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위대한 작품들이 모차르트란 인간에게서 나온 것을 저주합니다. 철저한 “이인자 콤플렉스”입니다. 이는 마치 자신보다 아벨을 선택한 하나님 앞에 항변하는 가인의 모습과 같습니다.
그의 처절한 시기와 질투입니다. 그는 모차르트의 죽음 이후 심한 죄책감으로 수차례의 자살을 시도합니다. 마침내 정신병원에 수감된 살리에리가 그를 찾아 온 신부에게 그의 “이인자 콤플렉스”를고백합니다.
“내가 오직 원했던건 하나님울 찬미하는 것이었소. 하나님은 내게 그 열망을 주셨지만, 날 또한 벙어리로 만드셨소. 어째서? 말해 보시오.”
“하나님께서 내가 주님을 음악으로 찬미하는걸 원하지 않으셨다면 왜 내 몸을 좀먹는 그런 열망을 심으셨는지. 그러면서 왜 재능은 주시지 않으셨는지 말이오.”
“난 세상의 모든 범인을 대변한다오. 내가 그들의 대변자이지. 난 그들의 수호성인이야. 세상의 범인들이여! 내가 너를 용서하노라. 내가 너희 모두를 용서하노라.”
“이인자 콤플렉스”에 사로잡힌 살리에리의 공허한 자조의 목소리로 영화는 막을 내립니다. 마치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물으시는 하나님 앞에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이니이까?”하고 항변하는 모습입니다.
성경은 이러한 “이인자 콤플렉스”를 사울과 다윗의 관계에서도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골리앗을 죽이고 이스라엘을 구한 다윗을 칭송하는 민중의 소리입니다.
이 노래는 사울의 시기와 질투심을 자극해 그를 심한 “이인자 콤플렉스”에 빠지게 합니다. 불행하게도 그는 평생 그 콤플렉스의 환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죽습니다.
살리에리는 많은 부분에서 사울을 닮았습니다. 가난한 시골 마을 출신인 살리에리는 예배당을 가득 채우는 아름다운 음악의 세계에 매료되어 각고의 노력으로 교회 지휘자 자리를 거쳐 궁정 악사 자리까지 오릅니다.
그는 우연한 기회에 모차르트의 연주를 접하고는 그의 천재성에 감탄합니다. 살리에리가 형식을 준수하는 교회 중심의 음악가인 반면, 모차르트는 시대의 감성을 뛰어넘는 천재적 음악가였습니다.
하루하루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불굴의 의지로 자신을 채찍질하는 수도자 같은 삶을 살던 살리에리가 “이인자의 콤플렉스”에 사로잡히자 마침내 사울과 같은 괴물로 변하면서 파멸의 구렁텅이로 들어갑니다.
비교의식은 이렇게 무섭게 우리의 영혼을 좀먹습니다. 시기와 질투는 교회 내에도 존재합니다. 서로 자신의 은사가 더 나은 은사라고 싸우던 고린도교회의 모습에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경쟁의식을 경계한 사도 바울은 말씀합니다.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나누어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롬12:3).
태권도 종주국인 한국이 이번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하나도 획득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런 한국의 모습을 뉴욕타임스의 어느 기자가 칭송하는 기사를 썼습니다. 아름다운 나눔과 양보의 스포츠 동행이라고 말합니다.
은메달을 차지한 한국 선수가 금메달을 딴 타국 선수를 진정으로 축하하는 장면이 낯설지 않은 아름다운 모습으로 다가옵니다. 시대를 역주행하는 선한 모습입니다.
오 주여
우리에게 이인자 콤플렉스가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성공을 함께 기뻐하고
축하하지 못하는 아픔이 있습니다.
주 안에서 진정한 자족의 평강을
누릴 수 있게 하소서
이 아침의 기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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