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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억 되어지는 연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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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억 되어지는 연보

          고후8:3 “그들이 힘 대로 할 뿐 아니라”

          코로나 팬데믹으로 말미암아 많은 우리들의 비즈니스가 타격을 받았습니다. 미처 대처할 경황도 없이 코로나가 닥쳤을 때, 가게 문을 닫아야했던 분들도 있습니다. 오늘의 양식에는 그러한 어느 분의 사연을 싣고 있습니다.

          피트니스 센터를 닫아야했던 제리는 몇 달간 수입이 없었습니다. 어느 날 친구로 부터 5시에 센터에서 만나자는 문자를 받습니다. 이유를 모른 채, 제리는 그 시간 그곳에 갔습니다.

          그 시간 많은 차들이 주차장으로 들어서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건물 입구에 미리 마련된 바구니 앞에 멈춰서고 카드와 돈을 놓고 갔습니다. 차 안에서 제리를 향해 손을 흔들거나 큰 소리로 안부를 묻고 격려했습니다.

          소위 말하는 drive-through 만남이었습니다. 그들을 바라보는 제리의 눈에는 어느덧 눈물이 맺혔습니다. 어떤 사람은 제리와 똑같이 자신들도 어려운 상황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들 모두가 시간을 내어 함께 어려운 처지에 있던 제리를 격려해 준 것입니다. 우리 말에 “십시일반”(十匙一反)이란 말이 있습니다. 밥 열 숟가락이 모여 한 그릇이 된다는 뜻입니다.

          그 숨은 뜻은 여러 사람이 조금씩 힘을 합하면 한 사람을 돕기 쉬움을 이르는 말입니다.  연보는 바로 이러한 “십시일반”의 의미를 지닌 헌금입니다. 사도 바울은 제리와 같은 상황에 처한 교회들의 기쁨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 그들의 넘치는 기쁨과 극심한 가난이 그들의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게 하였느니라”

          연보라는 말은 “버릴 연捐, 도울 보補”의 합성어로 “나의 것을 버려서 다른 사람을 돕는 것”을 의미합니다. 있어도 좋고, 없어도 되는 정도의 물질을 말하지 않습니다. sacrifice (희생)의 의미를 강하게 담고 있습니다.

          연보는 헌금 중에서도 특별히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위로하고 돕기 위한 구제 헌금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헌금은 연보를 포함하는 큰  의미를 가지고 있고 연보는 헌금의 한 종류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을 통해 사도바울은 우리에게 물질을 드릴 때에 우리가 가져야 할 자세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어떻게 드리는 것이 “기억되어지는 연보”인가? 무엇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헌금인가?

          무엇보다도 “기쁨으로 드리는 연보”라고 단적으로 말씀합니다. 환란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도, 극심한 가난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해서 기쁨으로 드리는 연보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연보라는 것입니다.

          마게도냐 지방의 교회와 성도들은 당시 로마제국의 극심한 종교적인 박해 , 경제적인 착취로 인해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궁핍한 삶을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예루살렘 교인을 위한 구제헌금에 넘치는 기쁨으로 헌신하였습니다. 나보다 못한 사람들을 돕는다는 교만한 우월 의식이나 동정심이 아니라, 구원의 감격으로 인한 영적 부요 때문이었습니다.

          스스로 가난해 지심으로 우리를 부요하게 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영적인 부요함 때문에 이들은 육체의 시련과 가난한 환경 속에서도 다른 이들을 위해서 기쁨과 감사로 연보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 받은 사랑을 이웃에게로 흘려 보내는 것이 연보의 진정한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자원하는 심령으로 드리는 물질”이 하나님을 기쁘게 합니다. “그들이 힘대로 할 뿐 아니라 힘에 지나도록 자원하여”
           
          충동적으로, 감정적으로, 즉흥적으로 작정한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것을 희생하면서까지 헌신적으로 자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자발적인 헌신을 기대하시고 또 그것을 통해서 일하시는 분이십니다.

          세번째는 “삶으로 드리는 연보”가 하나님을 기쁘게 합니다. 물질을 드리는 것에 앞서 먼저 삶을 드리는 것이 하나님께서 열납하시는 연보라는 것입니다. 바로 가인과 아벨이 드렸던 예물의 차이입니다.

          가인과 아벨의 결정적인 차이는 제물의 차이가 아닙니다. 그들의 믿음의 삶의 차이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받으신 것은 아벨과 그의 제물, 즉 아벨의 삶을 기쁘게 받으신 것입니다.

          우리가 드렸던 모든 예물 가운데 진정 “기억되어지는 연보”가 얼마나 될까?  눈물로 드린 우리의 예물, 하나님은 우리의 어떤 면을 기억하실까?

          오 주여
          우리가 드렸던 모든 예물을 돌아봅니다.
          거기에 우리의 마음과 정성 그리고
          우리의 삶이 담겨있지 않았던 적이 많습니다.
          이제부터는 “기억되어지는 연보”를
          드릴 수 있게 하옵소서
          이 아침의 기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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