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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yJjdCI6IkpLNXlwSnN1K3crc21iREorRXRFaEVjditKaHcxOG1oRXdcL2VHWWtOdlVVPSIsIml2IjoiNTY5ZGUwMDEzNDA2NjA3NjBhYWQyMGE0ZjJkNjQ0Y2EiLCJzIjoiZTljMTQwNTg1MmQxMzhmNiJ9| 등록일 : 2021.09.09 |조회수 : 114 |추천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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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집어 보기
고후5:14,16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하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우리가 이제부터는 어떤 사람도 육신을 따라 알지 아니하노라”
영어에 “플립 사이드(flip side)”를 보자는 표현이 있습니다. 어떤 상황을 뒤집어 보면서 다른 시각을 생각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창안해 낼 때 쓰는 말입니다. 이 말은 “포스베리 플롭”이라는 스포츠용어가 가져온 “뒤집기 발상”입니다.
“포스베리 플롭”은 높이뛰기 종목의 기술로 일명 “배면 뛰기”라고도 합니다. 높이 있는 장애물을 뛰어 넘을 때 배면으로 넘는 기술입니다. 이 기술이 선보이기 전에는 모두 앞으로 뛰어넘는 기술만을 사용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딕 포스베리라는 한 무명의 선수가 다이빙의 재주넘기 장면을 보다 아이디어를 얻습니다. 지금까지 하던 것처럼 앞으로 넘지 말고 뒤로 넘어 보자는 새로운 시험을 해 본 것입니다.
그 결과 놀랍게도 높이뛰기의 한계로 여겨졌던 2미터의 벽을 쉽게 뛰어넘을 수 있었습니다. 포스베리는 1968 멕시코 올림픽 높이뛰기에서 이 기술을 선보였고, 2.24m로 올림픽 신기록과 함께 금메달을 목에 걸었습니다.
이후로 다른 선수들도 포스베리가 선보인 기술을 익혀 널리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그날 포스베리가 이룬 것은 단순한 메달과 신기록이 아닌 새로운 역사의 탄생이자 높이뛰기 종목의 혁신을 이뤘던 것입니다.
포스베리의 새로운 기술은 사람들에게 “플립 사이드(flip side)를 보고 상황을 뒤집어 보게하는 “역발상의 계기”를 마련하였습니다. 위기를 기회로 보게 된 것도 이런 “플립 사이드”를 보는 지혜입니다.
오늘의 양식에 어려움을 뒤집어 보며 반전의 기쁨을 누리는 예가 소개되었습니다.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 오히려 “반전의 기쁨”을 누리고 있는 예루살렘의 단 호텔 이야기입니다.
이 호텔은 2020년에 “코로나 호텔”이라는 별명으로 유명해졌습니다. 이스라엘 정부가 그 호텔을 코로나 증상에서 회복 중인 환자들을 위한 시설로 지정하였습니다.
그 결과 그 호텔은 어려운 시기에 기쁨과 화합이 넘치는 보기 드문 장소가 되었습니다. 투숙객들은 이미 모두 바이러스에 감염되었기 때문에 오히려 자유롭게 함께 노래하고 춤추고 웃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 상황이 “코로나와 함께(with corona)”라는 시대적 정책을 생각하게된 계기를 마련해 주었는지 모릅니다. 서로 다른 정치 종교 인종 간의 긴장이 팽배한 이스라엘의 상황에서 겪게 된 반전 효과라 더 큰 의미를 지니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코로나라는 위기를 함께 겪으면서 서로를 용납하고 받아들이며, 서로를 “따뜻한 이웃”으로 보는 법을 배우고 더 나아가 친구가 될 수 있는 공간을 만든 것입니다.
코로나 펜데믹이라는 위기 상황이 오히려 그들에게 정치와 종교 및 인종간의 갈등과 대립을 뛰어넘어 서로를 용납할 수 있는 기회의 장을 열어준 것입니다. 위기상황에서 새로운 시각을 발견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바로 이러한 “뒤집어 보기”의 계기를 마련하신 “혁명”으로 소개합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이제부터는 어떤 사람도 육신을 따라 알지 아니하노라”
모든 갈등과 분쟁은 시각 차이에서 생깁니다. 한국에서도 시각차이로 인해 보수와 진보가 나뉘어 싸웁니다. 똑같이 남한에 살면서 서로 다른 시각으로 민족사를 봅니다. 상반된 주장과 갈등으로 민심까지 양분됩니다.
예수님의 시각과 제자들의 시각차이도 컸습니다. 제자들은 성전의 겉모습을 보고 그 화려함과 웅잠함에 매료되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성전 안에 있는 사람들의 부패함을 보셨고 성전의 멸망을 보셨습니다.
겉모습의 화려함만을 보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내면의 진면목을 보는 사람도 있습니다. 겉모습을 따라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반면에 내면의 것을 강조하며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땅의 것만 주목하고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늘의 것을 주목하고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육의 것만 보며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반면에 영의 것을 주목하며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은 이렇게 다른 시각에 새로운 계기를 이루신 혁명입니다. 그리고 선포합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이제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랑”이라는 새로운 시각으로 “뒤집어 보기”를 하는 사람들입니다. 내면을 보며 “진면목”을 바라보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뒤집기로 “화목케 하라는 직분”을 감당하는 사람들입니다.
오 주여
우리는 한쪽만을 늘 바라보았습니다
이제는 뒤집어 보는 지혜를 허락하소서
더 큰 안목으로 통합하는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보게 하소서
이 아침의 기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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