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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마음 한 뜻 같은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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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마음 한 뜻 같은 사랑

          빌2:2 “마음을 같이 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여 한마음을 품어”

          “억만장자가 말하는 스티브 잡스, 일론 머스크, 워렌 버핏의 공통점”에 소개된 어느 억만장자의 “도전적”인 발언이 있습니다. 그중 한가지 포인트를 발췌해서 소개하면 다음과 같은 것들입니다.

          “당신이 어울리는 사람들이 바로 당신 자체입니다. 당신의 친구들을 보여주세요. 그럼 제가 당신의 미래를 보여주겠습니다. 자존감은 자신감의 일종이죠. 또한, 자기 인식의 일종이기도 합니다.”

          “당신이 자존감을 키우고 싶다면 높은 자존감을 가진 사람들과 어울리세요. 당신이 되고 싶은 사람들이 있는 곳에 가십시오. 20년 30년 후 당신이 되고 싶은 모습을 찾으세요… 인생은 모델링입니다.”

          “당신 자신을 모델링하고 싶은 사람을 찾으세요. 그리고 그 사람이 한 것을 따라 하세요. 플라톤이 소크라테스를 따랐고, 아리스토텔레스가 플라톤을 따랐던 것처럼. 2,500년 전 그들이 그렇게 했다면, 현재 여러분도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사람은 자신과 함께 하는 누군가에게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누구든 자신이 어울리는 친한 사람들이 가는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 현재 우리가 어울리고 가까이 하는 사람이 누구인가에 따라 우리의 미래가 결정될 수 있다는 날카로운 지적입니다. 듣기에 따라 상당히 “이기적”인 관점일 수 있습니다. 같이 어울릴 사람을 취사 선택하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현재”의 만남이 “미래”를 좌우한다는 중요한 포인트를 지적합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나는 스스로 있는 자(I am who I AM)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영원한 현재”의 하나님이라고 자신을 소개하십니다.

          예수님도 자신이 “아브라함보다 먼저 있다(Before Abraham I AM)”이라고 말씀하시면서 “있었다”가 아니라 ‘있다’(I AM)’ 현재형으로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영원한 현재(I AM)”의 하나님이십니다.

          그 “영원한 현재”가 우리의 “영원한 미래”를 결정합니다. 우리가 현재를 살면서 과거에 집착하고, 과거를 후회하는 것이 전혀 생산적이지 않습니다. 또한 미래를 걱정하면 행복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기도와 간구로 너의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아뢰라”고 하십니다. “영원한 현재”와의 온전한 교제가 주는 만족과 행복을 말씀합니다.

          우리의 미래는 현재를 어떻게, 누구와 살아가는가에 달려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은 이와 같은 포인트를 더욱 포용적으로 말씀하시면서 적극적인 우리의 자세를 일깨워 주십니다.

          “마음을 같이 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여 한마음을 품어” 현재 우리가 주 안에서 어울리는 사람들과 미래를 함께 만들어 가면서 “한마음, 한 뜻, 같은 사랑”으로 마음을 같이 할 것을 말씀합니다.

          사도바울은 빌립보 교회의 순두게, 유오디아 여집사님들의 대립과 갈등구조를 보면서 아마 가롯 유다를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그 똑똑했던 유다가 예수님이 이끄는 그룹과 멀어졌기 때문에 다른 방향으로 나아갔습니다.

          “한마음 한 뜻 같은 생각”에서 떨어져서 그가 어울리는 다른 그룹을 형성할 때의 위험을 지적한 것입니다. 마음을 같이한다는 것은 분명히 겸손과 포용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더 꼬장꼬장해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반면에 더 온유해지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더 비판적이고, 어떤 분은 이전에는 그런 분이었지만 매우 온화하게 변하신 분들도 계십니다.

          “큰 사람”이 되려면 내 안에 받아들이는 사람이 더 많아야합니다. 하나님은 끝까지 거부해서 멀어지려는 이들을 제외하고는 좋은 사람, 나쁜 사람 할 것 없이 모두 받아들이십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배반할 것을 아시면서도 가롯 유다를 제자로 뽑으시고 곁에 두셨습니다. 가까이하기 좋은 사람만 뽑으신 것이 아닙니다. 가장 마귀 같은 인간도 곁에 두셨습니다.

          우리는 얼마나 큰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까? 혹시 우리는 사람을 까다롭게 구별하고 차별하지 않습니까? 품을 수 있어야 진정으로 큰 사람입니다. 우리는 어디까지 “한마음 한 뜻 같은 사랑”으로 포용할 수 있을까?

          오 주여
          편협하고 까다롭기만 했던 우리들입니다
          겸손과 포용으로
          “한마음 한 뜻 같은 사랑”을 이루게 하소서
          이 아침의 기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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