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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문 밖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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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문 밖으로

          히13:12 “예수도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하게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느니라

          어릴 적 기억에 화장실은 집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집 바깥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화장실을 ‘뒷간’이라고 불렀습니다. 화장실을 가려면 집을 나와서 어두컴컴하고 구석진 곳으로 가야만 했습니다.

          대낮에도 햇볕이 잘 들어오지 않는 냄새나는 그 화장실에 왜 꼭 밤만 되면 가야했는지 모릅니다. 그때마다 누나에게 들었던 무서운 ‘달걀 귀신’ 이야기가 생각나곤 했습니다.

          어린 마음에 ‘뒷간’은 정말 가기 싫은 곳이었습니다. 성경에 이와 비슷하게 사람들이 가기를 꺼려하던 곳이 있습니다. 바로 ‘영문 밖’이었습니다. ‘뒷간’과 비슷한 개념입니다.

          그곳은 진 바깥이었고 ‘성문 밖’이라고도 불렸습니다. 그곳은 “부정을 제거하는 곳”으로 분뇨를 처리하는 화장실도 그곳에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제사에 쓰인 고기를 태우는 장소도 바로 진 바깥이었습니다.

          ‘영문 밖’은 모든 부정을 제거하기 위한 곳이었습니다. 부정한 자라고 일컬어진 한센 병자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천막을 치고 거주하는 진 안에 들어올 수 없어 진 바깥으로 쫓겨나야 했습니다.

          심지어 더럽혀진 집의 흙을 긁어서 진 밖에 버리도록 정해두었습니다. ‘영문 밖’은 하나님 보시기에 정결치 못한 장소입니다. 그곳은 버림받은 것으로 가득찬 공간이었습니다.

          영적으로 보면 바로 그 공간이 우리 모든 사람들이 가야할 장소였습니다. 짐승의 육체가 부정하게 여겨져서 영문 밖에서 불태워 없애버리듯이 부정하게 된 우리들이 멸망당해야 하는 곳이 바로 그 곳이었습니다. 그곳에서 우리 주님께서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도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하게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느니라”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과의 사귐이 있는 ‘영문 안’ 으로 인도해 주시기 위해서 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예배 찬양 가운데 “보혈을 지나”라는 찬양이 있습니다. 바로 이러한 주님의 보혈을 의지해서 ‘영문 안’으로 들어가는 예배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보혈을 지나 하나님 품으로
보혈을 지나 아버지 품으로
보혈을 지나 하나님 품으로
한 걸음씩 나가네
존귀한 주 보혈이 내 영을 새롭게 하네

          일본에 사무라이 전통에 이를 비슷하게 상징하는 것이 있습니다. 일본에서 천민은 사무라이가 될 수 없었다고 합니다. 사무라이가 되고 싶은 천민 아이는 반드시 ‘피의 희생’ 을 치루어야 했다고 합니다.

          일본에서 성을 지을 때 기둥에 산 사람을 넣고 지으면 그 성이 허물어지지 않는다는 전설이 미신처럼 내려왔습니다. 새로 성을 지을 때는 반드시 누군가 “희생 제물”이 필요했습니다.

          천민 태생인 아이의 어머니는 성을 짓는 성주에게 가서 자신이 그 기둥에 들어갈 테니 자신의 아들에게 사무라이 교육을 시켜달라고 요청합니다. 그리고 어머니의 희생으로 아이는 그 성에서 사무라이 교육을 받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민 출신 아이들은 귀족 출신 아이들의 ‘이지매’(왕따)를 겪어야만 했습니다. 그러한 괴롭힘에 도망가고 싶을 때마다 아이들은 어머니가 들어가 계신 기둥을 부여잡고 울었다고 합니다.

          어머니의 죽음에서 나오는 그 피는 도망치고 싶은 그 아이의 자아를 죽여 새롭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아이는 사무라이로 새로 태어납니다. 상징적인 전설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할 때 홍해를 건넌 것을 사도 바울은 ‘세례’에 비유하십니다. 그런데 바다를 왜 ‘홍해’(붉은 바다)라고 하였을까? 애굽(구습)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반드시 어린양의 ‘피’가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보혈을 찬양하며 아버지의 품으로 들어가는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의 더러운 죄의 구습을 죽일 수 있는 능력은 예수님의 ‘피’밖에 없습니다. 어린 양의 피가 우리를 깨끗게 하십니다.

          이렇게 “거룩함을 입은” 우리들을 하나님은 보내시기를 원하십니다. 성경의 주제에 나온대로 “Come & Go”가 이루어지는 모습입니다. 이렇게 “보내심”을 받은 우리들의 모습을 히브리서 기자는 펀치라인으로 멀씀합니다.

          “그런즉 우리도 그의 치욕을 짊어지고 영문 밖으로 그에게 나아가자”(히13:13)

          영문 밖은 세상에서 거절 당하고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있는 곳입니다. 그곳은 편안하고 안락한 comfort zone이 아닙니다. 그곳은 우리의 도움이 필요한 곳입니다. 힘들고 불편한 그곳에 가라고 하십니다.  왜냐하면 바로 그곳에 우리 주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오 주여
          우리보다 먼저 가신 “영문 밖으로”
          우리도 따라가기 원합니다.
          ‘땅끝’인 그곳에서 주님 뵙기 원합니다.
          이 아침의 기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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