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마다 일어나서 커피 한 잔을 마시고 아침 묵상을 시작하는 습관이 있어서 커피는 하루 일과를 시작하는 동반자와 같습니다. 아침 커피의 진한 향이 마치 영혼을 깨우는 것 같이 생각과 기도를 맑게해 줍니다.
이 아침에는 커피에 얽힌 이야기가 마음에 다가옵니다. 먼저 펄씨스터즈의 “커피 한 잔”을 빼놓을 수가 없습니다. 그만큼 어릴 적, 그 노래는 “뽕짝과 일본식 엔가”가 주류를 이루던 당시 가요계에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그 당시 라디오를 틀면 하루에도 거의 5-6번 들을 수 있던 노래로 기억합니다. 그때부터 한국 사람들의 “커피 사랑”이 머리에 각인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데 커피에 얽힌 더 충격적인 스토리가 있습니다.
600만이 희생된 홀로코스트의 유대인 학살 때에 있던 “커피 반 잔”의 이야기입니다. 당시 유대인들을 학살하는데 최대 장애가 되었던 것은 그들을 가스실에 집어넣어야 하는 독일군의 양심이었다 합니다.
그들도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이를 극복시키기 위해 독일 나치는 고도의 심리전을 전개하였습니다. 유대인을 짐승으로 전락시키는 고도의 전략이었습니다.
인간을 죽이기는 힘들어도 인간 모습을 한 짐승이면 좀 더 쉬워지기 때문입니다. 대상이 짐승처럼 여겨지면 그 때부터는 무슨 짓이든 양심의 가책을 덜 받고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를 위해 수용소에 화장실을 설치하지 않았습니다. 3만 2천명의 유대인들이 수용된 곳에 그들을 위한 화장실은 오직 하나만을 지어 놓았습니다. 하루 일과가 끝나면 수용소의 문이 닫힙니다.
하루에 두 번까지 화장실 가는 게 허용되었지만 일과 시간에만 화장실을 다녀와야 했기 때문에 그 많은 사람들이 화장실 앞에서 한 없이 기다려도 차례가 오기 전에 문이 닫혔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매일같이 배변의 고통에 시달렸고 자신들의 식기와 깡통에 배설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수용소는 온통 배설물로 악취가 나고 더러운 것으로 가득 찼습니다.
그들 스스로도 자신들이 인간이기 보다는 동물에 더 가깝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씻는다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고, 거기다 자신들의 식기에 배변을 해야 하는 처지에 스스로를 짐승이라고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을 짐승처럼 보기 시작한 것은 독일군들이 아니라 먼저 유대인 자신들이었던 것입니다. 그런 와중에 결국 몇몇 사람들이 끝까지 버티고 살아난 것은 바로 “커피 반 잔” 때문이었습니다.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의 증언을 담은 책에 자신과 같은 몇몇이 극한의 상황을 견뎌내고 기적처럼 살아날 수 있었던 이유를 “반 잔의 커피” 때문이었다 기록하고 있습니다.
매일 새벽 4시 반이면 모두에게 한 잔의 따듯한 커피가 배급되었습니다. 물론 악취를 풍기는 구정물과 비슷한 것이었지만, 잠을 깨우고 추위를 이기는 데는 그것만큼 좋은 것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개중의 몇몇은 커피를 반쯤만 마시고 나머지 반으로는 얼굴을 닦고 옷에 적셔 이를 닦는 데에 사용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비웃어도 그들은 스스로 짐승이 되기를 거부했던 것입니다.
짐승이 되지 않기 위해 끝까지 자신과의 싸움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짐승으로 사느니, 사람으로 죽는 편을 택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커피 반 잔”은 마셔버리면 한 두 모금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또한 그들을 짐승으로 만들 수도, 사람으로 만들 수도 있는 “최소한의 자존감”이었던 것입니다. 그런 자존감이 강한 사람들만이 결국 끝까지 살아남게 되었습니다. 그들에게 이러한 자존감을 갖게한 말씀이 다윗의 시편 23편입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자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사망의 골짜기에 있어도 주께서 함께 하신다는 강한 믿음은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자존감”입니다. 그 자존감은 우리에게 그 자존감에서 비롯된 행동을 하게 합니다. 어떤 상황에도 두려워하지 않는 것도 이러한 자존감 때문입니다. 이 자존감은 우리에게 엄청난 능력으로 나타납니다.
“커피 반 잔”은 하루에 30분이 될 수도 있고 단돈 1-2불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하루에 남는 30분을 기도하는 시간에 활용하고, 그 1-2불을 가난한 사람에게 줄 수 있다면 그 사람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자존감을 지키는 것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냥 자신만을 위해 써버리며 살아간다면 짐승이 되어버리는 쪽을 끊임없이 택하는 것입니다. 이 아침 커피 반 잔에 담긴 우리의 영적 자존감이 마음에 다가옵니다.
오 주여
우리에게 주어진 아주 작은 것이라도
육체적 욕심 만을 위해 써 온 저희들입니다.
이제 우리의 “영적 자존감”을 지키게 하소서
이 아침의 기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