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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시 말씀 앞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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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시 말씀 앞에

          렘36:1 “여호와께로부터 예레미야에게 말씀이 임하니라”

          옛날 인기 사극 드라마였던 ‘대장금’에 보면 수랏간에서 일하던 어머니가 훗날 ‘생각시’로 들어와서 일을 하게 될 딸을 위해 음식 만드는 레시피를 적은 책을 담벼락 아래를 파고 장독에 묻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 딸인 장금이가 이를 알아내고 장독 묻힌 곳을 찾아냅니다. 결국 레시피를 대물림한 장금이가 그것대로 음식을 만들어 임금님의 상을 차리게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예레미야 시대에 말씀을 기록한 것과 유사한 상황입니다.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로 하여금 요시야 왕 시절부터 여호야김 시대에 이르기까지 23년동안 유다백성에게 말씀하신 모든 것을 두루마리에 기록하여 유다백성에게 전할 것을 명령하십니다.

          요즘에야 컴퓨터 칩에 엄청난 양의 자료를 보관할 수 있지만 당시에는 말씀을 두루마리에 기록하고 둘둘 말아서 보관하고 펼쳐서 읽었습니다. 습지에서 나는 갈대 파피루스나, 양의 가죽을 재료로 만든 것입니다.

          1947년 한 목동이 양을 잃고 찾으러 다니다 사해 근처인 쿰란 동굴에서 양이 그 안에 있나 해서 돌을 던져 보았습니다. 양이 있으면 양이 우는 소리가 들릴 것이기에 그랬습니다.

          그런데 양의 울음소리가 아닌 항아리 깨지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들어가서 깨진 항아리를 보니 그 안에 히브리어로 필사된 두루마리 책들이 발견된 것입니다.

          근처 11개의 동굴에서 구약성경 대부분이 무더기로 발견됩니다. 쿰란 사본입니다. 쿰란에서 성경이 마치 대장금의 대물린 레시피처럼 발견되어 우리에게 전해진 것입니다.

          쿰란 성경사본이 주는 가장 큰 의미는 하나님의 말씀의 “영원성”입니다. 대물림하며 대대로 전해진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어떠한 경로를 거치더라도 변함없이 우리에게 전해지는 말씀입니다.

          예레미야가 바룩에게 구술한 말씀은 “유다 가문이 내가 그들에게 내리려 한 모든 재난을 듣고 각기 악한 길에서 돌이키리니 그리하면 내가 그 악과 죄를 용서하리라”(36:3)는 약속이었습니다

          간단하지 않습니까?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가면 됩니다. 그러면 문제는 해결된다는 약속입니다. 그런데 유다민족은 인간적인 방법을 선택합니다. 바벨론에 조공을 바치고 속국이 되는 길을 택합니다.

          그나마도 의리를 저버리고 애굽과 주변국들과 연합하여 바벨론의 뒷통수를 치려하고 바알과 아세라, 우상 앞에 절합니다. 온갖 치사한 방법을 다 동원하였습니다. 결과는 매만 번 것이 됩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태도에 대하여 살펴 보게 됩니다. 선포되어지는 하나님의 말씀에 반응하는 태도입니다. 요시야 왕과 여호와김 왕은 정반대의 태도를 보입니다.

          여호야김 왕은 낭독되는 말씀을 들으며 요시야 왕처럼 자기 옷을 찢는 대신, 두루마리를 찢어 추운 겨울날 난방을 위해 피어 놓은 화로 위에 던졌습니다.

          그는 그렇게 함으로 자신의 미래만이 아니라 나라의 미래마저 어둡게 만듭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말씀을 듣고 그 말씀에 자신의 모습을 비춰보고 회개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요시야와 같은 사람입니다.

          반면에 자신과는 전혀 상관없는 말씀으로 취급하며 듣지 아니하고 설령 듣더라도 그냥 흘려버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여호와김과 같은 사람입니다. 자신과 후대의 미래까지 어둡게 만드는 사람입니다.

          최근에 심심치 않게 둥장하는 신조어 가운데 캔슬 컬처 (Cancel Culture)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소셜 미디어(SNS)상에서 자신과 생각이 다른 사람에 대해 팔로우(Follow)를 취소하는 문화를 가리켜 시작된 말입니다.

          자신과 의견이 다른 누군가를 인내심을 갖고 지켜보는 대신 빠르게 '절교'하는 것이 그 핵심입니다. SNS 상에선 누군가와 관계를 맺고 끊는 것이 클릭 한 번으로 쉽게 이루어지다 보니 “수틀리면” 쉽게 돌아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대하는 것도 이와 같이 자기 취향에 맞는 것만 선택히는 캔슬 컬처가 작용하고 있는 것이 “소비자 영성”입니다. 여호와김과 같은 우려스러운 태도입니다.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우리로 하여금 깨닫게 하시고 우리로 하여금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어느 방향으로 가야하는지를 알려주는 나침반과 같습니다.

          잘못된 삶에서 올바른 삶으로 인도해 주는 지침서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 말씀을 붙잡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심령에 담아야 합니다. 그 영원하신 말씀이 오늘도 우리에게 변치않는 능력으로 역사하기 때문입니다.

          오 주여
          마치 여호와김처럼 헛된 것을 붙들고
          살아왔던 저희들입니다
          영원히 변치 않는 주님의 말씀을
          붙들고 다시 말씀 앞에 나왔던 요시야처럼
          우리도 다시 말씀 앞에 서도록 하소서
          이 아침의 기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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