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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메시아닉 쥬
        • eyJjdCI6IlwvcnVVaElGWHBna1VveXZ6M0hlNmVFUXRxUXpja01RTFN5d01iTXIzcHZBPSIsIml2IjoiOTg4ZGFlMTQzMTc5ZDgwM2FkZjk4YTA4MWJhOTQ0YWYiLCJzIjoiZWMyOTEzY2U5YTVkMDA0MCJ9| 등록일 : 2021.10.21 |조회수 : 241 |추천 : 0
        • 메시아닉 쥬

          요5:39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메시아닉 쥬(Messianic Jew)는 예수를 메시야로 고백하고 믿는 유대인들을 부르는 호칭입니다. 그 숫자는 아직 미미하지만 꾸준히 늘고 있어서 이제는 이스라엘에서도 무시할 수 없는 숫자가 되고 있습니다.

          아직 많은 유대인들이 예수(예수아- 그들이 부르는 이름입니다)를 메시야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습니다. 그들은 신약 성경 자체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안타깝게도 20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로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거기에 핵심적인 쟁점이 바로 요한 복음에 기록된 말씀입니다.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 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갖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유대인들의 자긍심은 대단했습니다. 히브리 성경인 구약 성경 두루마리는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이 가장 소중히 여기던 보물이었습니다.

          예수님도 유대인들의 구약 성경 연구와 목적 의식을 공유하셨습니다. 생명을 얻기 위해 구약 성경을 연구하는 그들의 자세에는 잘못된 것이 전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분명한 오류를 지적하십니다.

          구약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읽었던 유대인들의 가장 큰 문제는 예수를 메시야로 인정하지 않고 “예수님의 시각”으로 구약 성경을 재조명하지 않은 점입니다. 바로 그것을 주님께서 지적하신 것입니다.

          그들은 구약 성경을 읽고 연구하는 목적이 생명을 얻기 위함인데, 이 성경 전체가 예수님에 대하여 증언하고 있다고 말씀하시니 유대인들 입장에서는 분노할 일이었습니다.

          구약 성경이 영생을 주는 책인 것을 인정했지만 그 생명이 예수님 안에 있다는 사실은 인정하지 않았기에 예수님의 시각으로 성경을 해석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마침내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히시게 합니다.

          이러한 유대인들의 시각을 혁명적으로 바꾼 것이 바로 이사야서 53장의 재발견입니다.  고난 받으신 종, 메시야에 대한 예언은 유대인들에게는 마치 아킬레스 건과 같은 말씀입니다. 십자가의 고난을 예언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진실되게 받아들이고 그 말씀을 “체험한 사람”들이 “메시아닉 쥬”입니다. 그들은 빛으로 임하신 예수님의 표적을 이구동성으로 증언합니다. 그들의 삶에 돌이킬 수 없는 이적과 표적의 체험으로 다가온 것입니다.

          그들의 간증을 들으면서 마음에 다가온 것이 “반지의 제왕”이라는 영화입니다. 판타지 영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해리 포터”나 “반지의 제왕” 같은 시리즈 물을 별로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다 몇년 전 뉴질랜드에 집회를 갔다가 “반지의 제왕”이란 영화를 촬영한 장소에 가 보았습니다. 그 장소에 매료되어 한 편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 영화에서 “반지”는 힘이고 권력이며 영광을 상징합니다.

          그리고 작고 착한 인물이 하나 나오는데 ‘호빗 프로도’입니다. 문제는 반지를 끼면 엄청난 힘을 발휘하여 악을 쳐부술 수 있지만 계속 끼고 있으면 빼고 싶은 마음이 점점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그 착한 ‘프로도’까지 눈빛이 바뀌고 반지를 빼려 하지 않습니다. 반지를 가지고 싶어서 안달이 난 ‘골룸’이나 그 반지를 결국 내어주어야 하면서도 더 오래 갖고 싶어 하는 ‘프로도’나 크게 다를 바가 없습니다.

          바로 영광이 이런 것입니다. 오래 만지고 있으면 중독이 됩니다. 신앙 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려다 영광 자체에 중독이 되는 수가 있습니다. 수단이 목적이 되어, 수단에 집착하는 경우입니다.

          유대인들의 오류가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려다, 하나님을 섬기는 자신들의 방식에 집착하고 오히려 하나님을 부인하게 된 것입니다.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바리새인, 서기관들의 “자기 중독”입니다.

          우리도 똑같은 오류를 범할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고 하면서 그 영광 자체에 중독되는 경우입니다. 신앙의 본질에서 벗어나 우리 자신의 방법에 몰두하면 얼마든지 우리도 바리새인과 같은 오류를 범할 수 있습니다.

          내가 주님을 섬기고 있으면서도 마음이 공허하다면 분명 내가 주님께 드리고 있는 그 방식에 중독되어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중독이 되면 공허한 마음이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여기에는 누구도 예외가 없습니다.

          우리가 “자기 영광”을 추구하면 하나님에게서 오는 영광은 끊어지기 때문입니다. 신앙은 “오직 예수”입니다. 오직 그분께 영광을 돌릴 때 우리에게 한없는 기쁨과 평강이 마치 “선물”처럼 우리에게 주어집니다.

          오 주여
          오직 예수만을 구합니다
          다른 헛된 유혹을 버리게 하소서
          수단에 얽매이지 않게 하소서
          신앙의 본질만 추구하게 하소서
          이 아침의 기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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