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자의 삶
감리사 시절, 저는 거의 100명의 목사님들과 교회 개척자들을 섬겼습니다.
매년 여름이면 그들과 새롭게 일대일 면담을 하며
사역에 대한 비전과 어려운 도전 그리고 개인적인 일들까지 상담하고 서로 기도 가운데 나누곤 했습니다.
어느 해, 저는 그분들께 중요한 질문을 했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하셨던 질문을 조금 바꿔서 물었습니다.
예수님은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고 물으셨지만
저는 "너희는 너희를 누구라 하느냐? (Who do you say you are?)"하고 질문을 던졌습니다.
여러가지 다른 대답이 나왔습니다.
가장 많은 대답이 "하나님의 종"이었지만 Cecil Stone이라는 목사는 "예배자"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저는 그 면담이후 깊은 생각울 하게 되었습니다.
성경은 우리의 정체성을 예수님과 우리들의 관계를 알려주는 여러가지 상징으로 알려주고 있습니다.
"포도나무와 가지" "신랑과 신부" "주인과 종" "그리스도의 편지" 등의 여러 상징으로 우리의 정체성을 알려줍니다.
베드로전서에는 구체적으로 우리가 누군지를 지적합니다.
"택하신 족속" "왕 같은 제사장" "거룩한 나라" "그의 소유된 백성"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요한 계시록은 예배자로서의 우리를 상징적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계시록은 종말에 관한 예언의 말씀이지만 그 가운데 흐르는 핵심은 예배입니다.
끝장인 22장으로 가면 가장 완성된 예배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새하늘과 새땅을 말씀하며 그때에는 "하나님과 그 어린 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 있고"
우리는 예배자로서 하나님을 섬기며(예배하며) 그의 얼굴을 볼 것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주의 임재 가운데 살아가는 모든 삶이 바로 예배자의 삶이며
하루하루 우리는 완성될 예배를 매일 연습하며
그날에는 얼굴과 얼굴을 맞대면 하며 예배하게 될 것이라는 약속입니다.
그러므로 매일매일 우리의 섬김의 삶은 예배의 연장이 됩니다.
영어로 주일예배를 Sunday Service(섬김)이라고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예배가 바로 섬김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도 "너희 몸을...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라고 하십니다.
오늘도 예배자의 삶을 모든 섬김가운데 이루시며 살아가시는 여러분을 기도 가운데 응원합니다!
계22:3-4 "하나님과 그 어린 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에 있으리니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 그의 얼굴을 볼터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