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위로
요즘들어 연예인이나 기업가 심지어는 검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직종에 있는 사람들이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으로 생을 마감해서 사회에 경종을 울리고 있습니다.
그 중에도 몇년전 인기 탈렌트 정다빈씨의 자살은 기독교계에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죽기 전 새벽에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린 절절한 기도문은 고인이 심한 고통 상태에 있었던 것을 보여줍니다.
무엇보다 더 충격적인 것은 신실한 그리스도인이었던 그녀가 왜 자살을 선택하였나 하는 질문입니다.
고인은 "은혜"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하나님 정말 얼마 만에 주님을 불러 보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동안 얼마나 나태해져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지금 이 순간 주님은 저를 돌아보게 하시고 이렇게 글을 쓰게 하십니다...
왜 그러시는지 알지 못하지만...종전까지 뭉쳐있던 아픔과 슬픔들이 지금 녹아내립니다.."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고인은 극심한 외로움을 겪고 있어 정신장애까지 이르렀던 것을 다음과 같이 드러내고 있습니다.
"지금 저는 너무나 못되지고 사나워지고...주님을 외면한 채 방황하고 있습니다...
못되고 못난 생각에 찌들어 있습니다"
이러한 유서를 대하면서 우리에게 다가오는 질문이 있습니다.
이렇게 주님께 애틋한 사랑을 고백하는 사람이 어찌 자살을 할 수 있는가? 의구심을 버릴 수가 없습니다.
Inside Out이라는 책에서 저자는 인간의 욕구를 세가지로 나누어 설명합니다.
근본적인 욕구, 기본적인 욕구, 그리고 일상적인 욕구입니다.
일상적인 욕구는 모든 사람이 추구하는 평범한 의식주등에 얽힌 것이고
기본적인 욕구는 사회적인 욕구 즉 이웃과 친구를 필요로 하는 욕구입니다
근본적인 욕구는 하나님과의 교통이 없는 외로움을 합니다.
정다빈 자매의 경우 근본적인 욕구가 채워졌음에도 불구하고
기본적인 욕구를 극복할 수 없는 장애증상을 보인 case입니다.
Christian fellowship의 결여가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가를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극도의 외로움은 만남을 통해 해소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만남, 믿음의 형제 자매들과의 만남을 통해 해소하는 것이
건강한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지름길임을 알려줍니다.
우리 주변에 홀로 외로움에 눈물을 흘리고 계신 분은 안 계십니까?
나의 모든 것을 이해해주고 받아주는 사람이 없다고 스스로를 결박하고 계신 분은 안 계십니까?
여러분의 사연을 들어주실 분이 필요하지 않으십니까?
여기 나눔의 장이 있습니다.
비록 만족스럽지 못하고, 흠이 많고, 타박도 많고, 말도 많지만,
그래서 오히려 사람 사는 냄새가 물씬 풍기는 교회, 믿음의 공동체로 오셔서 여러분의 외로움을 토로하십시오.
직접적인 언어로 토로하지 않아도 됩니다.
다른 말로 하시더라도 외로움을 해소하십시오.
그리고 올겨울에는 책 한권을 읽으십시오.
"그대 만난 뒤 삶에 눈떴네"(레이첼 나오미 레멘)을 읽으십시오.
기도와 묵상을 나누는 속회, small group, 동아리 그룹 등에 속하십시오.
요한 웨슬리 목사님의 표현이 생각납니다.
Christian conference is a means of grace (그리스도인들의 나눔은 은혜의 수단입니다).
18세기에 conference는 회의를 말하지 않고 교제, 나눔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위로는 직접적으로 오기도 하지만 흠많고 탈많은 형제자매의 모임과 사귐을 통해서 오기도 합니다.
은혜의 수단을 활용하십시오.
형제자매와 나누십시오
그들이 다가오기 전에 내가 먼저 손 내미십시오
오늘도 은혜의 지평선이 새롭게 열립니다.
고후1:3-4 "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요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