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라도"의 신앙
성경에 나타난 몇몇 인물들의 범상치 않은 결기와 믿음을 보여주는 표현에 "~~지라도"라는 것이 있습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풀무불에 던져질지라도 우상에 절을 하지 않겠다고 거절합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풀무불 가운데에서 능히 건져내실 것이고 설사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신상에 절하지 않겠다고 결연히 선언합니다.
하박국의 결기 넘치는 신앙도 "~지라도"의 신앙입니다.
밭에 소출이 없고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즐거워하겠다는
눈물이 흐르는 아픔 가운데 결연하개 외치는 신앙의 선포입니다.
소록도에 가면 한센병으로 인생의 어려움을 질병과 싸우는 환우들이 모여 있습니다.
방방곡곡에서 많은 사람들이 그곳을 방문해 소록도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직접 경험하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소록도의 하나님을 만나려면 그곳에 가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지라도"의 하나님을 만나야
비로소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다고 합니다.
어떤 상황에도 감사하고 불평하지 않는 신앙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다니엘의 세 친구가 풀무불에 들어간 후에 느브갓네살 왕의 눈에 보인 것은
세 사람이 아니라 네 사람이 불 가운데 다니며 불이 몸을 상치 못하게 되는 장면입니다.
무엇을 상징할까요?
예배의 장면입니다.
예배는 지극히 영적입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가 풀무불에 던져졌을 때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예배였습니다.
그 예배에 우리 주님이 함께 하셨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인생의 가장 힘들고 어려운 순간일지라도 우리가 회복해야할 것은 바로 예배입니다.
이 예배는 우리의 결연한 신앙고백으로 시작됩니다.
"~지라도"의 신앙입니다. "No matter what~"의 선포입니다.
이러한 결기가 넘치는 신앙은 세번째 "~지라도"인 축복의 신앙으로 이어집니다.
미가가 우리 주님의 탄생을 예언하며 축복하는 장면입니다.
"베들레헴 에브라다 너는 유다 족속중에 작을지라도....창대하여 땅끝까지 미치리라"
이 축복의 선언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루어졌고 이제 우리에게 임한 축복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지금은 비록 작고 우리 믿음의 몸부림이 초라해 보일지라도
이러한 믿음의 결국은 창대함을 이루게 될 것입니다
단3:17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능히 건져 내시겠고"